남녀노소가 모두 뛴다…사랑처럼 신비한 달리기 매력

남녀노소가 모두 뛴다…사랑처럼 신비한 달리기 매력

에티오피아 마라톤 선수들과 함께한 작가의 훈련일지…신간 '달리기 인류'
 

달리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달리기
[연합뉴스 자료사진]


(서울=연합뉴스) 송광호 기자 = 강변이나 천변을 따라 걷다 보면 달리는 사람들을 자주 목격할 수 있다. 홀로 뛰는 이들도 있고, 그룹 지어 달리는 이들도 있다. 이들 가운데 마라톤 풀코스, 혹은 하프 마라톤에 도전하겠다는 사람도 많다. 젊은 층부터 노령층까지, 남녀노소 관계없이, 다이어트부터 근력 강화까지 저마다의 이유로, 그들은 달린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는 에세이이자 회고록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What I Talk About When I Talk About Running)의 제목을 그가 추앙해 마지않았던 미국 소설가 레이먼드 카버의 소설집 '사랑을 말할 때 우리가 이야기하는 것들'(What We Talk About When We Talk About Love)에서 따왔다. 사랑처럼, 달리기에도 글로 완벽히 포착할 수 없는 무엇인가가 있기 때문이었다.
 

[문학동네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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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작가이자 인류학자 마이클 크롤리가 쓴 '달리기 인류'(서해문집)는 달리기의 비밀에 대해 파고든 에세이다. 2시간40분 이내에 마라톤을 완주하는 저자가 직접 에티오피아에 가서 15개월 동안 현지 선수들과 훈련하고, 느낀 바를 기록했다. 진심을 담아 어떤 일에 도전한 사람들의 글에는 설명할 수 없는 무언가를 발견할 수 있는데, 크롤리의 글이 그렇다.

마라톤에 도전한 저자는 세계 마라톤을 제패한 에티오피아 선수들의 훈련법을 그대로 따라 하기 시작한다. 숨이 턱턱 막히는 3천500m가 넘는 에티오피아 고산지대에서, 물웅덩이를 내디딜 때 젖어 든 무거운 신발을 신고, 동료들과 리듬을 맞추며 그들은 뛴다. 아무 생각 없이, 함께 훈련하는 동료의 발과 팔의 궤적을 따라 하면서. 마치 '마라톤 황제'라 불린 에티오피아 출신의 위대한 마라토너이자 그들의 대선배인 아베베 비킬라(1932~1973)가 그랬던 것처럼.
 

4만명 모인 2006년 베를린마라톤 [EPA=연합뉴스]

4만명 모인 2006년 베를린마라톤
[EPA=연합뉴스]


목동으로 가난하게 자란 아베베는 1960년 로마 올림픽에서 혜성처럼 등장했다. 팔을 흔들며, 반쯤은 춤을 추는 듯한 주법으로 그는 결승선을 통과한 후에도 콘스탄티누스 개선문 아래로까지 계속해서 달렸다. 환희를 맛보기 전, 2시간 동안 구부러져 있던 팔을 흔들어 푸는 정리 운동이었다. 산소가 희박한 고산지대에서 젖은 신발을 신고 뛰던 그에게 로마의 둔덕진 코스와 42.195㎞의 거리는 난코스가 아닌 평지처럼 순탄한 길이었다. 희박한 산소가 아닌 풍부한 산소 속에서, 늪지가 아닌 단단한 땅에서 내달렸을 때, 아베베는 "마치 하늘로 솟구치는 기분"을 느꼈을 테니까 말이다. 당시 세계를 제패한 소련의 포포프, 모로코의 라디가 있었지만, 그 누구도 이런 아베베의 적수가 될 수 없었다.
 

게브르셀라시에  [EPA=연합뉴스]

게브르셀라시에
[EPA=연합뉴스]


아베베 이래로 에티오피아는 우리나라의 '양궁'에 비견할 정도로 마라톤과 장거리 경기에서 무적의 선수들을 배출해왔다. 마라톤 등 장거리 분야에서 27개의 세계기록을 보유하고 무수한 메달을 목에 건 하일레 게브르셀라시에, 세계 크로스컨트리 선수권 10연패에 빛나는 케네니사 베켈레, 2024파리올림픽 마라톤 우승자 타미랏 톨라 등 일일이 거명하기 어려울 정도로 많다. 인구 1만7천명이 사는 작은 마을에서만 아프리카 여성 최초의 올림픽 10,000m 금메달(데라르투 툴루), 올림픽 여자 마라톤 우승(파투마 로바), 여자 5,000m 세계기록 경신(티루네시 디바바), 남자 5,000m 및 10,000m 세계기록 경신(케네니사 베켈레) 등이 나왔다.
 

케네니사 베켈레 [EPA=연합뉴스]

케네니사 베켈레
[EPA=연합뉴스]


우승과 신기록의 비결은 의외로 간단했다. 누구보다도 뛰어난 동료들 속에서, 그들은 가난에서 탈출하기 위해 뛰었다. 다만 단순히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 뛰진 않았다. '선의의 경쟁' 문화도 있었지만, 그보다 더 큰 부분을 차지한 건 팀워크였다. '여러 가닥의 실이 모이면 사자도 묶을 수 있다'는 암하라어(에티오피아 공용어) 속담처럼, 에티오피아 마라토너들은 팀을 우선으로 여겼다. '우승제조기' 케네니사 옆에는 늘 은메달에 머물러 '미스터 실버'라 불린 페이스메이커 실레시 시히네가 있었다.

케네니사, 티루네시 디바바 등을 길러낸 전설적 지도자 센타예후 코치는 "그 시절 에티오피아 팀은 경기에 앞서 가장 강한 선수를 정하고, 나머지 두 선수는 그를 보조하는 방식으로 뛰었다"며 "에티오피아는 뛰어난 선수를 찾는 게 문제가 아니라, 이 선수들을 한 팀으로 만드는 게 문제였다"고 회고했다.
 

[서해문집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서해문집 제공. 재판매 및 DB금지]

결국, 뛰어난 동료들과의 경쟁과 팀워크가 에티오피아 장거리 주자들의 성공방정식인 셈이다.

저자는 "서로의 발을 따라 뛰고, 모범을 보고 배우거나 직접 부딪히며 익히는 과정에서 최고 수준의 달리기를 가능케 하는 건, 관리와 규율은 물론 그 바탕에 있는 호기심과 모험심"이라고 말한다.

정아영 옮김. 384쪽.

buff27@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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