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필 사인 떼고·사진 가리고'…전국서 尹 대통령 흔적 지우기
'尹 방문' 식당 "손님 발길 끊길라"…공공기관 국정운영 액자 철거
대통령 휘호 표지석 '내란' 문구 표시도…"불법 계엄에 분노 표출"
'계엄 사태' 관련 뉴스 보는 서문시장 상인
지난 8일 오전 대구 중구 서문시장에서 한 상인이 '계엄 사태' 관련 뉴스를 보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전국종합=연합뉴스) 12·3 비상계엄 사태로 탄핵 정국이 이어지면서 윤석열 대통령에 대한 민심이 날로 악화하는 가운데 윤 대통령 '흔적 지우기'가 전국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다.
윤 대통령이 민생행보 일환으로 방문한 시장과 식당 등에서는 상인들이 대통령 친필 사인과 사진을 뗀 광경을 쉽게 찾을 수 있고, 공공기관과 기념관에서도 이와 비슷한 모습이 목격되고 있다.
손님 기다리는 시장 상인
지난 10일 오후 충남 공주시 공주산성시장에서 한 시장 상인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일 윤석열 대통령은 소상공인·자영업자 지원 대책을 발표한 뒤 공주산성시장을 방문해 상인들을 격려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시장·식당 '尹 방문' 지우기…"계엄 선포 뒤 사진 떼어 내"충북 청주 육거리시장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60대 A씨는 비상계엄이 선포된 지난 3일 식당 출입문에 붙여놓았던 윤 대통령의 방문 사진을 떼어냈다.
A씨는 당일 비상계엄이 선포됐다는 얘기를 듣자마자 사진을 제거했다.
그는 "전쟁이나 준전시 상황도 아닌데 계엄을 선포했다길래 어이가 없고, 화가 치밀었다"며 "중학생 시절 박정희 전 대통령이 사망한 뒤 계엄령이 선포돼 군인들이 총을 들고 거리를 누비던 광경이 떠올라 섬뜩했다"고 말했다.
이어 "오시는 손님마다 사진을 잘 뗐다고 말은 해주시지만, 혹시 발길을 아예 끊는 손님이 있을까 걱정"이라고 전했다.
경기 의정부시 한 부대찌개 식당에서는 비상계엄 사태 이후 윤 대통령 친필 사인이 담긴 액자가 사라지고, 대신 텅 빈 벽과 못만 남았다.
이 식당은 올해 초 윤 대통령이 민생 행보의 하나로 주민들과 부대찌개를 함께 먹었던 곳이다.
식당 종업원은 "지금 상황에서 큰일 날 일 있느냐, 어떤 사람이 여기다가 걸어두겠느냐"며 "사장이 계엄 다음 날 바로 떼어버렸다"고 전했다.
윤 대통령 외가가 있는 강원 강릉시 한 순두부 식당은 손님들 등쌀에 못 이겨 윤 대통령이 다녀간 사진을 지웠다.
보수 진영의 상징적인 민생현장인 대구 서문시장에서도 이 같은 일이 벌어지고 있다.
서문시장에서 한 칼국수 가게를 운영하는 70대 박모 씨는 얼마 전 식당에 걸려 있던 윤 대통령 현수막을 떼어냈다.
그는 "손님들이 '밥맛없다'며 윤 대통령 욕하는 걸 듣는 게 싫어서 어제 (윤 대통령) 현수막을 뜯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윤 대통령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구광모 LG 회장 등이 함께 찾아 떡볶이와 빈대떡 등을 먹어 입소문을 탄 부산 중구 깡통시장 분식점도 사정은 비슷하다.
현재 이 분식점 벽에 걸려 있던 당시 사진은 윤 대통령 모습만 종이로 가려진 상태다.
중구 관계자는 "시장 상인들은 장사에 지장이 생길 수 있겠다 싶으면 누구보다 민감하게 반응한다"며 "비상계엄과 탄핵 분위기 때문인지 대통령과 관련된 사진과 영상을 게재한 곳은 보이지 않았다"고 말했다.
울산 남구 신정시장 한 중국집에 붙어있던 윤 대통령 사인도 최근 떼어진 것으로 알려졌다.
부산 깡통시장 찾은 기업 총수들
지난해 12월 6일 김동관 한화그룹 부회장(왼쪽 두번째부터), 최재원 SK 수석부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구광모 LG그룹 회장, 정기선 HD현대 부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원태 한진그룹 회장이 부산 중구 부평깡통시장을 방문한 윤석열 대통령과 동행하고 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공공기관·기념관도 흔적 지우기 잇따라…"계엄에 대한 분노 표출"더불어민주당 소속 최대호 경기 안양시장은 지난 9일 자신의 페이스북을 통해 '국정운영 목표 액자 철거했습니다'는 제목의 글과 함께 국정운영 목표 액자 철거 전후의 집무실 사진을 올렸다.
최 시장은 "윤석열 정부는 국정운영의 정당성과 권위를 상실했으며, 국민을 대표하는 통치권한이 더 이상 없다"면서 "이에 따라 국민 뜻과 동떨어져 있는 정부의 국정목표를 상징하는 액자를 철거하는 것이 헌법적 가치를 지키기 위한 국민적 저항의 상징적 행동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광주에서는 공공기관 대표가 집무실에서 국정지표를 떼며 윤석열 대통령의 비상계엄령 선포 사태에 항의했다.
김현성 광주경제진흥상생일자리재단 대표는 지난 9일 "취임할 때부터 있어서 공직 사회의 규칙으로 알고 그냥 뒀으나 내란수괴 윤석열의 목표를 따를 수 없어 집무실 액자를 떼어냈다"고 밝혔다.
윤석열 정부는 '상식이 회복된 반듯한 나라, 민간이 끌고 정부가 미는 역동적 경제, 따뜻한 동행 모두가 행복한 사회, 자율과 창의로 만드는 담대한 미래, 자유·평화·번영에 기여하는 글로벌 중추 국가, 대한민국 어디서나 살기 좋은 지방시대' 등 6대 목표를 국정지표로 설정했다.
옛 대통령 별장인 충북 청주 청남대에는 얼마 전까지 대통령기념관 내에 윤석열 대통령의 사진 1점이 걸려 있었으나 현재는 사라졌다.
전시 공간 리모델링 때문에 별도 공간에 임시 보관 중이지만, 공사 완료 뒤 이 사진을 다시 게시할지는 아직 정해진 바가 없다.
대통령기념관에는 역대 대통령 사진들을 전시하는데, 앞서 탄핵당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의 사진도 탄핵 사실을 명기해 게시한 점 등이 고려될 것으로 보인다.
충북도 청남대관리사무소 관계자는 "현재 대통령기념관은 휴게공간으로 바꾸고 기념관 내 사진이나 물품은 다른 공간으로 이전할 계획"이라며 "사진을 어떻게 게시할지는 정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경남 창원시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앞마당에 있는 윤석열 대통령 휘호가 담긴 표지석에는 '내란'이라는 문구가 찍혔다.
비상계엄 사태로 촉발된 탄핵 정국에 분노한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현장을 찾아 검은색 스프레이로 표시한 것이다.
민주노총 경남본부 관계자는 "국민 다수가 윤석열 대통령이 내란을 일으킨 주범으로 보는 상황이며, 불법 계엄에 대한 분노 표출이다"고 말했다.
민주노총, 대통령 표지석에 '내란' 래커칠
(창원=연합뉴스) 김동민 기자 = 지난 10일 경남 창원시 성산구 한국산업단지공단 경남지역본부 앞에 설치된 윤석열 대통령 표지석에 민주노총 경남본부가 래커로 '내란' 글자를 덧붙였다.
해당 표지석은 윤 대통령이 창원국가산업단지 출범 50주년을 기념해 남긴 문구(산업 강국의 요람 창원국가산업단지)다. 현재는 가림막이 설치된 상태다. 2024.12.11 [민주노총 경남본부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변지철 박성제 이성민 김용태 장아름 홍현기 윤관식 심민규 박영서 김준호 김동민 김인유 정종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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