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 '현금 없는 사회'로 바뀐다?


한국만 '현금 없는 사회'로 바뀐다?

매년 현금 사용 줄고 카드·온라인 결제 급증
한국, 현금 사용률 20%대…미국·영국도 10%대 초반
편리함이 주요인…결제망 마비·금융 소외 우려도

 

오늘부터 현금 없는 버스 확대 운행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서울시가 기존 18개 노선·436대였던

오늘부터 현금 없는 버스 확대 운행
(서울=연합뉴스) 최재구 기자 = 서울시가 기존 18개 노선·436대였던 '현금 없는 버스'를 108개 노선·1천876대로 늘려 운행을 시작한 1일 서울역 앞 버스 정거장에 안내 현수막을 부착한 버스가 운행하고 있다.
2023.3.1 jjaeck9@yna.co.kr


(서울=연합뉴스) 박형빈 기자 = "누구나 가슴 속에 3천원쯤은 있는 거예요!"

한겨울 언제 어디서 마주칠지 모르는 노점에서 붕어빵을 사 먹기 위해 현금 몇천원 정도는 갖고 다녀야 한다는 의미인데, 한 드라마의 유명 대사를 패러디한 이 유행어마저 이제는 옛말이 됐다.

시민들의 지갑에서 현금이 점점 사라지자 대부분의 노점상도 현금 대신 계좌이체를 받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노점뿐만 아니라 전국 각지 시내버스는 아예 현금을 받지 않는 추세고, 스타벅스는 수년 전부터 상당수 매점에서 '현금 결제 불가' 팻말까지 내걸었다.

경조사비를 낼 때를 제외하고는 현금을 전혀 쓰지 않는다거나 스마트폰 간편 결제 시스템에 의존해 지갑 자체를 들고 다니지 않는 젊은 세대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그렇다면 '현금 없는 사회'로의 전환은 우리나라만의 상황일까?

매년 현금 사용 줄고 카드·온라인 결제 급증우리나라에서 현금 사용은 빠르게 줄고 있다.

한국은행이 2015년부터 3년마다 실시하는 '경제주체별 현금 사용행태 조사'에 따르면 2021년 가구당 월평균 현금지출액은 51만원으로, 2018년(64만원)에 비해 25.4% 감소했다.

전체 지출액 중 현금의 비중은 2015년 38.8%, 2018년 32.1%에서 2021년 21.6%로 떨어졌지만, 신용·체크카드는 37.4%, 52.0%, 58.3%로 꾸준히 증가했다. 코로나19 사태로 인한 비대면 확대 영향을 고려하더라도 카드보다 근소하게 앞섰던 현금이 6년 만에 역전돼 절반 이하로 곤두박질친 것이다.

일상적인 거래를 위해 지갑이나 주머니 등에 소지하는 '거래용 현금'은 1인당 평균 8만2천원이었고, 집·사무실 등에 보관하는 '예비용 현금'은 35만4천원이었다. 응답자의 68.6%는 예비용 현금을 전혀 갖고 있지 않다고 했다.

기업의 현금 사용도 급감했다.

기업의 2021년 월평균 현금지출액은 912만원으로 2천906만원이던 2018년에 비해 68.5% 감소했다. 지급 수단별 지출액을 보면 현금은 1.2%에 불과해 계좌이체(86.0%), 신용·체크카드(8.0%), 어음·수표(4.7%)에 크게 뒤처졌다.

현금 결제 감소는 젊은 세대를 중심으로 카드와 온라인 결제가 확산한 영향이 크다. 디지털 경제 활성화를 위한 정부와 기업의 정책, 간편결제 기술 발전도 흐름을 가속하는 것으로 분석된다.
 

스타벅스

스타벅스 '현금없는매장' 시작
(서울=연합뉴스) 서명곤 기자 = 스타벅스가 전국 103개 매장에서 '현금 없는 매장' 운영을 시작한 16일 오후 서울 시내 한 스타벅스 매장에서 직원이 고객에게 현금이 아닌 신용카드, 모바일페이 등 다른 결제수단 이용을 권유하고 있다. 2018.7.16
seephoto@yna.co.kr


우리의 일상 생활에서도 '현금 없는 사회'로의 변화를 체감할 수 있다.

서울시는 2021년 일부 시내버스에서 현금 승차를 폐지한 이후 점차 그 비중을 늘려가고 있다. 인천, 대전, 제주, 대구, 광주, 세종 등 전국 지자체도 현금 승차 폐지를 시범 운영하고 있거나 올해 전면 폐지를 앞두고 있다.

2018년 스타벅스가 도입한 '현금 없는 매장'도 전국 및 다른 동종업계 매장들로 확대됐다. 상주 인원이 없는 무인 아이스크림 가게 등 소매점은 키오스크만 이용할 수 있어 현금 결제가 불가능하기도 하다.

한국은행의 조사에 따르면 2021년 상점과 음식점에서 현금결제를 거부당한 경험이 있다는 응답자는 전체 가구의 6.9%로 2018년보다 늘었다. 거부 경험자의 64.2%는 카페 등 프랜차이즈 매장에서 경험했으며 자영업 사업장(13.7%), 기업형 슈퍼마켓(5.4%) 등에서도 거부 경험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현금을 인출할 수 있는 국내 15개 은행의 현금자동입출금기(ATM)는 2019년 말 3만6천146대에서 지난해 7월 2만7천76대로 9천70대(25.09%) 줄었다.

해외도 탈현금화 추세…'현금 사용권' 보장 논의도'현금 없는 사회'는 우리나라에 국한된 게 아니라 세계적인 흐름이다.

중국은 현금이나 실물 카드 대신 '알리페이', '위챗페이' 등 간편 결제 서비스가 이미 주류로 자리 잡았다. 탈현금화의 대표 주자 격인 스웨덴은 교회 헌금을 내거나 길거리 노숙인으로부터 자활잡지를 구매까지도 카드 결제가 가능하다.

월드페이의 '2024 글로벌 결제 보고서'에 따르면 2023년 세계 현금거래(POS 결제 기준)의 비중은 전체의 16%로 약 6.1조달러 규모였다. 이는 2020년 19%에서 감소한 수치이며 2027년에는 11%로 축소될 것으로 전망됐다.
 

세계 각국의 현금 결제 가치 규모(2019, 2023, 2027년) [월드페이 보고서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세계 각국의 현금 결제 가치 규모(2019, 2023, 2027년)
[월드페이 보고서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2023년 현금 결제가 가장 많았던 국가는 나이지리아(55%)로, 태국(46%), 일본(41%), 멕시코(38%), 독일(36%)이 뒤를 이었다. 미국(12%), 영국(10%), 중국(7%), 호주(7%), 노르웨이(4%) 등은 현금 결제가 상대적으로 적었다.

보고서는 디지털 지갑과 비현금 결제 수단의 확산으로 2027년에는 콜롬비아, 멕시코, 나이지리아, 페루, 스페인 등 5개국만이 현금을 주된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고 프랑스, 싱가포르, 한국, 영국, 미국 등도 현금 거래 비율이 10% 이하로 떨어질 것으로 예측했다.

모든 국가를 막론하고 현금 사용이 줄어드는 가장 큰 이유는 '편리함' 때문이다. 보관·휴대가 번거로운 현금보다 빠르게 결제하고 소비 내용도 쉽게 확인할 수 있는 카드·간편결제를 선호한다는 것이다.
 

중국 알리페이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중국인 고객이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편 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Alipay)로 결제하고 있다. 2018.11.15     je

중국 알리페이
(서울=연합뉴스) 안정원 기자 = 15일 오전 서울 중구 롯데마트 서울역점에서 중국인 고객이 중국에서 사용하는 간편 결제시스템인 알리페이(Alipay)로 결제하고 있다. 2018.11.15
jeong@yna.co.kr


정부 역시 금융거래의 투명성을 높이고 결제 데이터를 활용해 정책을 효율적으로 수립할 수 있다는 점에서 비현금 결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현금 발행·회수에 따른 비용을 줄일 수 있는 점도 장점이다.

하지만 비현금 결제에 전적으로 의존할 경우 발생할 수 있는 치명적인 단점도 있다.

자연재해나 사고, 전쟁 등으로 결제 네트워크가 파괴되면 국가의 결제 기능이 마비될 위험이 있다. 2021년과 2022년 KT 통신망 장애와 SK C&C 데이터센터 화재 당시 국민 실생활과 밀접한 온라인망이 훼손돼 사회 전반이 혼란을 겪은 사례도 있다.

최신 결제 시스템에 익숙하지 않은 고령자·장애인 등 사회적 약자들이 금융 소외를 겪을 수 있고 해킹으로 자금이 유출되는 등 사이버 범죄로 연결될 수 있는 위험성도 제기된다.

이 때문에 세계 각국은 현금을 사용할 수 있는 선택권을 보장하고 관련 인프라를 개선하는 방향의 보완책을 마련하고 있다.

미국 매사추세츠는 소매상거래에서의 현금결제를 법적으로 보장하며 필라델피아는 현금 결제 거부를 금지하는 개정안을 2019년 발효했다. 스웨덴은 예금 규모 700억 크로나 이상의 대형 상업은행의 현금 취급업무를 의무화하는 법안을 시행 중이며, 영국은 ATM 수가 적절하게 유지되도록 감독을 강화하고 있다.

한국은행 관계자는 "현금 없는 사회의 장점도 있지만, 현금은 위기 시 최후의 보루로 사용되는 결제 수단인 만큼 현금의 비중이 줄어들며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최소화해야 할 것"이라고 했다.

binzz@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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