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에 침입해 목 조르고 있었는데…"


"집에 침입해 목 조르고 있었는데…"

나나 강도 제압 사건으로 '정당방위' 논란 재점화
강도 부상에 정당방위 검토하자 "당연히 정당방위 아닌가"
범죄에 대응한 자기방어, 법적 경계는 어디까지
"법조문만으로 구체적 기준 어려워…종합적 판단 필요"


나나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나나
[플레디스엔터테인먼트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서울=연합뉴스) 최혜정 인턴기자 = "정당방위 이런 내용이 나오는 것도 웃김. 집에 침입하고 목 조르고 있었는데."(X(엑스·옛 트위터) 이용자 'MON***')

"우리나라는 정당방위에 너무 엄격한 기준을 적용하는 것 같아요."('0ha***')

최근 그룹 '애프터스쿨' 출신 배우 나나 모녀의 강도 제압 사건을 계기로 정당방위를 둘러싼 이러한 논란이 다시 일었다.

해당 사건은 '위험 상황에서의 순간적 방어가 어디까지 허용되는지'라는 오래된 질문을 다시 소환했다.

[엑스 이용자
[엑스 이용자 'MONDS_JH' 및 '0happyjin00' 게시글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지난달 15일 오전 6시께 30대 남성 A씨가 흉기를 든 채 나나의 경기 구리시 자택에 침입해 강도 행각을 벌였다.

A씨는 나나의 어머니를 보자 목을 조르는 등 상해를 가한 것으로 알려졌다. 나나 모녀는 A씨와 몸싸움을 벌였고, 이 과정에서 A씨가 턱부위 열상을 입은 것으로 조사됐다.

나나 소속사 써브라임은 "강도의 공격으로 나나의 어머니는 심각한 부상을 입고 의식까지 잃는 상황을 겪었다"며 "나나 역시 위기 상황을 벗어나는 과정에서 신체적 부상을 입었다"고 알렸다.

경찰은 사건 발생 후 7일이 지난 지난달 22일 "피해자들에게 실질적인 침해가 있었고, 이를 방어하는 과정에서 피의자에게 심각한 상해를 가하지는 않은 것으로 조사됐다"며 "종합적으로 판단했을 때 피해자들의 행위는 정당방위에 해당한다고 판단해 입건하지 않았다"고 밝혔다.

그러자 소셜미디어(SNS)를 중심으로 당연히 정당방위라 여겨지는 일을 두고 경찰이 검토 과정을 거쳤다는 점에 '판단이 필요한 일이냐'는 여론이 일었다.

엑스에는 "얼척없는 상황은 경찰이 정당방위 인정하네 마네 하는 거"('sab***'), "당연히 정당방위 아닌가. 뭘 인정까지 받아야 함"('Mad***'), "무조건 정당방위지. 무슨 입건할 생각이라도 있냐"('sum***') 등의 반응이 올라왔다.

드라마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 속 주인공과 범인의 몸싸움 장면
[유튜브 채널 'tvN DRAMA' 영상 캡처. 재판매 및 DB 금지]


정당방위로 인한 논란은 드라마에서도 종종 조명했다.

대표적으로 2017년 방송된 tvN 드라마 '슬기로운 감빵생활'은 에이스 야구 선수 김제혁(박해수 분)이 여동생을 성폭행하려던 남성과 몸싸움을 벌인 결과로 졸지에 감옥에 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김제혁이 치열한 몸싸움 과정에서 길바닥에 놓여 있던 유리 트로피로 범인의 머리를 가격했는데, 제압하기 위한 행동이었음에도 정당방위를 인정받지 못하고 과잉방위로 징역 1년이 선고됐다.

당시 누리꾼들은 "정황상 무조건 정당방위가 맞다고 생각되는데…이 드라마를 계기로 잘못된 법도 고쳐 줬으면 하네요"(네이버 이용자 '항상***'), "동생을 성폭행 하려는 범인이 눈앞에 있는데 잘 도망가 하고 보냈어야 하나요"('로***') 등의 목소리를 냈다.

또 JTBC 드라마 '날씨가 좋으면 찾아가겠어요'(2020)에서는 심명여(문정희)가 형부에게 폭행당하는 언니(진희경)를 구하려다 비극적 상황에 놓인다.

쫓아오는 형부를 피해 언니와 함께 차로 도망치려던 심명여는 형부가 골프채로 차 앞유리를 내리치며 위협하자 순간적으로 차를 몰아 그를 들이받는다. 형부는 그 자리에서 즉사했다.

법원은 가정폭력을 당한 상황임을 감안하더라도 과잉방위라며 징역 7년을 선고했다. 가정폭력 피해자가 가해자가 돼버린 상황에 언니가 운전대를 잡았던 심명여의 죄를 뒤집어쓰고 대신 감옥에 간다.

'최말자는 무죄다'
(부산=연합뉴스) 손형주 기자 = 61년 전 성폭행하려던 남성의 혀를 깨물어 중상해 혐의로 기소돼 유죄 판결을 받았던 최말자 씨가 지난 9월 10일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선고 공판을 마친 뒤 "최말자는 무죄다"를 외치고 있다. 최씨는 61년 만에 열린 재심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2025.12.7 handbrother@yna.co.kr


형법 제21조는 '현재의 부당한 침해'로부터 자기 또는 타인의 법익을 지키기 위한 행위가 '상당한 이유'가 있을 경우 정당방위로 인정된다고 규정한다.

실제 사건에서는 행위가 방위 목적이었는지, 정도가 과했는지,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등 여러 요소가 얽혀 있어 해석의 여지가 크다.

이에 '정당방위'와 '과잉방위'에 대한 경계가 모호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실제로 시대의 변화, 사회적 인식의 변화에 따라 과잉방위가 정당방위로 바뀌기도 한다.

대표적으로 '강제 키스, 혀 절단'의 최말자(78) 씨가 지난 9월 61년 만에 열린 재심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1964년 경남 김해에서 성폭력을 당할 위기에 놓였던 최씨는 가해자의 혀를 깨물어 저항했다.

최씨는 자신의 행위를 정당방위라고 주장했지만 당시 법원은 "(남성을) 불구의 몸이 되게 한 방위 행위는 법이 허용한 상당한 정도를 지나쳤다"며 중상해 혐의로 유죄를 선고했다.

이는 성폭력에 대한 여성의 정당방위를 사법 시스템이 무시한 상징적인 사건으로 남았다.

그로부터 56년 뒤인 2020년 최씨는 부산지방법원에 재심을 청구했다. 그러면서 검찰이 조사 첫날 아무런 고지 없이 자신을 구속했고 기소된 뒤 재판부는 '남성에게 호감이 있었던 것이 아니냐', '남성과 결혼할 생각이 없느냐'는 등 2차 가해를 했다고 폭로했다.

지난 7월 부산지법에서 열린 재심 첫 공판에서 검찰은 무죄를 구형하며 뒤늦은 사과를 했다.

이에 스레드 이용자 'sop***'는 "우리나라의 정당방위 법도 한번 손봐야 할 것 같음", 'don***'는 "이게 61년이 걸릴 일이냐. 속이 뒤집어진다"라고 썼다.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 포스터
[한국영상자료원 KMDb 캡처. DB 및 재판매 금지]


'정당방위 경계' 논의에 불을 지핀 건 최씨 사례뿐만이 아니다.

최씨 사건과 함께 자주 언급되는, 이른바 '혀 절단 사건'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변월수 사건이다.

1988년 변월수 씨가 귀가하던 중 골목길에서 청년에게 성폭행당하다 청년의 혀를 절단한 혐의로 기소된 사건이다.

여성이 성폭행당하다 남성의 혀를 깨물어 절단한 점, 사건 이후 수사 및 재판 과정에서 2차 피해를 본 점, 가족 및 사회로부터 점차 고립되는 점 등 최말자 씨 사건과 유사한 측면이 많았다.

이 사건은 1990년 영화 '단지 그대가 여자라는 이유만으로'로도 만들어졌다.

영화 속 주인공(원미경 분)이 판사에게 "만일 또다시 이런 사건이 제게 닥친다면 순순히 당하겠습니다", "여자들한테 말하겠습니다. 반항하는 것은 안된다고, 얘기하는 것도 안된다고, 재판을 받는 것은 절대로 안된다고 말입니다"라고 말하는 장면으로 유명하다.

흉기 난동범에 경찰관 피습 (광주=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 오전 3시 10분께 광주 동구 금남로 한 골목에서 A 경찰관이 5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쓰러지고 있다. A 경찰관은 B씨를 제압하는 과정에
흉기 난동범에 경찰관 피습
(광주=연합뉴스) 지난 2월 26일 오전 3시 10분께 광주 동구 금남로 한 골목에서 A 경찰관이 50대 남성 B씨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쓰러지고 있다. A 경찰관은 B씨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총기를 사용했고, 실탄에 맞은 B씨는 대학병원으로 이송됐으나 오전 4시께 사망했다. 2025.12.7 [독자 제공. 재판매 및 DB 금지] in@yna.co.kr


그런가 하면 피의자를 제압하는 과정에서 경찰 대응이 정당방위 논란을 낳기도 했다.

지난 2월 광주에서 흉기로 경찰관을 공격한 남성이 경찰관이 쏜 실탄에 맞아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사람이 숨진 만큼 사회적 논란이 불가피했으나 광주경찰청은 경찰관의 정당방위로 판단하며 2001년 경남 진주 사건을 근거로 언급했다.

2001년 당시 진주경찰서 경찰관 B씨는 피의자가 흉기를 소지했다는 정보를 받고 지원 요청에 출동했다. 거친 몸싸움 과정에서 그는 동료를 구하기 위해 피의자를 향해 공포탄과 실탄을 각각 1발씩 발사했다.

그러나 총탄에 맞아 숨진 피의자가 흉기를 소지하지 않았던 것으로 확인되면서 경찰의 과잉 대응 책임론이 불거졌다.

B씨는 1·2심에서 '총기를 사용하지 않고도 피의자를 제압할 수 있었을 것'이라는 판단에 따라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대법원에서 급박한 상황에 동료를 구출하기 위한 행동이었다며 원심을 뒤집고 무죄를 선고했다.

전문가들은 정당방위를 판단하는 데 있어 법조문만으로 구체적 기준을 마련하기 어려우며,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홍영기 고려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정당방위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더 가벼운 방법으로 막을 수 있었는지, 다른 선택지가 있었는지 등 종합적으로 상황을 살펴야 한다"며 "이 부분은 사안마다 너무 달라 법조문을 더 구체화해 해결하기는 어렵다"고 지적했다.

이어 "우리 법원이 정당방위에 비교적 보수적으로 접근해 과잉방위로 판단하는 경우가 더 많은 것 같다"며 "이는 법조문이 잘못됐다기보다는 사실관계 판단의 문제"라고 짚었다.

장승혁 한양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또한 "정당방위와 과잉방위를 가르는 기준이 모호하다는 지적은 있지만, 이를 법으로 더 명확하게 규정하는 데에는 구조적인 한계가 있다"며 "방위 행위가 상당성을 넘어섰는지를 일률적으로 규정하더라도 결국 종합적인 판단이 필요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haemong@yna.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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