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한인회, ‘ICE 단속 대처 세미나’ 성황
“모든 이민자에게 권리가 있다. 알고 행사해야 한다”
최근 연방 이민단속이 전국적으로 강화되는 가운데, 타코마 한인사회가 위기 상황에 스스로 대비하기 위해 의미 있는 시간을 마련했다. 타코마한인회(회장 김창범)는 지난 17일 타코마한인회관에서 ‘이민단속국(ICE) 대처 세미나’를 개최하며 시민권자·영주권자·학생비자·서류 미비자 등 신분을 불문하고 모든 한인에게 적용되는 기본권과 실제 단속 상황에서의 대응 요령을 상세히 소개했다.
이번 세미나는 주 시애틀총영사관 후원으로 열렸으며 이진규·이승영·공유화 변호사, 김주미 생활상담소 소장, 시애틀항만청 샘 조 커미셔너, 워싱턴주 노동산업부(L&I) 김지원 담당관 등 다양한 전문가들이 강연자로 참여했다. 이날 세미나에서 이승영 변호사는 최근 언론을 통해 알려진 무리한 체포 장면로, 임신한 여성이 바닥에 내동댕이쳐지고, 개가 풀려 위협받는 사례 등을 언급하며 “이것이 더 이상 남의 일도, 특정 인종의 문제도 아니라는 사실”을 강조하는 발언으로 시작됐다.
이 변호사는 “한인들도 이미 이런 피해를 보고 있지만 대부분 모르고 당하고 있다”며 “현재의 이민 정책은 무질서에 가깝지만, 그렇다고 법이 죽은 것은 아니다. 권리를 알고 행사하는 사람만이 부당한 단속에 맞설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오늘 배운 내용을 가족·이웃과 나누는 것이 한인 전체를 지키는 길”이라고 강조해 참석자들의 공감을 얻었다.
강연의 핵심은 헌법이 보장하는 기본권이 신분과 무관하게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적용된다는 점이었다. 이 변호사는 ICE 요원과 마주쳤을 때 반드시 기억해야 할 표현으로 “말하지 않겠습니다(I wish to remain silent)”, “변호사와 상의하겠습니다(I want to speak to a lawyer)”, “제가 가도 됩니까?(Am I free to go?)”, “한국 영사관과 통화하겠습니다(I want to contact the Korean Consulate)”
등을 소개하며 “여러 말을 늘어놓는 순간 불리한 진술이 녹음되어 오히려 자신을 위험에 빠뜨린다”고 경고했다. 특히 단속 상황에서는 이름과 주소 외에는 말할 필요가 없으며, 출생지·국적·이민신분을 묻는 질문에는 단호히 묵비권을 행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장에서 배포된 브로셔에는 실제 단속이 일어날 수 있는 상황별 행동요령이 구체적으로 담겼다.
ICE가 집 문을 두드렸을 때는 문을 열지 않은 상태에서 영장을 확인해야 하며, 판사의 서명·정확한 주소·체포 대상자의 이름이 명시되지 않은 영장은 무효이므로 문을 열지 말아야 한다.
공공장소에서 단속이 이루어질 경우에는 먼저 “제가 가도 됩니까?”라고 물어 자유로운 상태인지 확인하고, 신분 관련 질문에는 묵비권을 행사하는 것이 권리 보호에 도움이 된다.
운전 중 단속이 이뤄져도 차량 밖으로 나올 의무는 없으며, 면허증·보험증·등록증 외의 질문은 대답하지 않아도 된다.
구금되었을 때는 어떤 문서에도 섣불리 서명하지 말고 변호사와 상담을 요청해야 하며, 체포 과정에 불법성이 있을 경우 헤이비어스 소송이나 보석 심리를 통해 석방을 요구할 수 있다는 설명도 이어졌다. 이승영 변호사는 “가능하다면 단속 상황을 촬영하고, 요원의 이름과 배지 번호를 기록해 두라”며, “이 기록들이 추후 법적 대응에 중요한 증거가 된다”고 조언했다.
참석자들의 관심이 높았던 공항 단속과 관련해서는 시애틀항만청 샘 조 커미셔너가 직접 설명에 나섰다. 그는 “시애틀-타코마 국제공항은 연방 관할이라 ICE를 완전히 배제할 수는 없지만, 항만청은 ICE 단속 작전에 협조하지 않는다는 정책을 공식적으로 채택했다”고 밝혔다.
ICE는 주로 입국심사 후 ‘세컨더리 심사실’에 머무르며 일반 터미널에서 승객을 체포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설명했다. 만약 승객이 공항 공개 구역에서 ICE 활동을 목격한다면 항만청에 즉시 신고해 달라는 당부도 이어졌다. 그는 또 항만청이 트럼프 행정부가 예산을 압박하며 협조를 강요하자, 오히려 이를 문제 삼아 연방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사실도 공개해 큰 관심을 모았다.
이날 세미나에서는 범죄 경력과 시민권 신청의 관계에 대한 설명도 이어졌다. 공유화 변호사는 “영주권자가 시민권을 신청할 때는 과거 모든 범죄 기록을 숨김없이 제출해야 한다”며 “기록 자체보다 기록을 숨기거나 누락한 사실이 더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한인사회에서 가장 빈번한 DUI(음주운전)는 워싱턴주 교통국 기록에 사실상 평생 남기 때문에 삭제가 불가능하며, 시민권·영주권 심사 과정에서 매우 불리하게 작용한다고 설명했다. 경범죄의 경우 일정 조건이 되면 기록 삭제가 가능하지만, 집행유예·형 집행·선고 종료 후 일정 기간(3~5년 이상)이 지나야 하며, 범죄 종류에 따라 삭제할 수 없는 경우도 있어 초기 대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했다.
노동 신분과 관련해서는 워싱턴주 노동산업부(L&I) 김지원 담당관이 “워싱턴주에서는 서류 미비자도 다른 노동자와 똑같이 보호받는다”고 강조해 주목을 끌었다. 고용주가 이민 신분을 이유로 임금을 덜 주거나 협박하는 행위는 모두 불법이며, 올해 7월 1일부터는 이민 신분을 빌미로 직장에서 위협을 가하거나 휴가 사용을 제한하는 행위도 명확히 금지되었다.
그는 “이민 문제로 변호사 상담이나 절차가 필요할 경우, 법이 보장하는 유급 병가(Paid Sick & Safe Leave)를 사용할 수 있다”며 한인들에게 적극적인 신고와 상담을 당부했다.
행사 후반에는 타코마 생활상담소, 한인 변호사협회, KAC 워싱턴 등이 함께 구성한 ‘Korean American Immigration Task Force’가 소개됐다.
이 단체는 단속 상황 대응, 변호사 연계, 긴급 통역, 가족 연락 등 즉각적인 도움을 제공하는 24시간 한국어 핫라인 1-844-500-3222(NAKASEC)를 운영 중이다.
관계자는 “얼마 전 홈디포 주차장에서 ICE에 체포된 한인을 핫라인을 통해 신속히 대응한 사례도 있다”며 “이민 단속은 개인이 아닌 공동체의 문제다. 서로 돕고 연결되어야 한다”고 밝혔다.
세미나는 2시간 넘게 이어졌지만 참석자들은 끝까지 자리를 지키며 높은 관심을 보였다. “막연한 두려움이 줄었다”, “가족 모두와 다시 공부하겠다”는 반응이 이어졌다. 강연자들은 마지막으로 “권리를 아는 사람은 살고, 모르는 사람은 당한다”며, 어떤 상황에서도 말하지 말고, 서명하지 말고, 포기하지 말 것을 거듭 당부했다. 타코마한인회는 이번 세미나를 계기로 한인 사회의 권리 교육을 지속적으로 이어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박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