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애틀문학회, 지난달 28일 ‘제19회 설립기념식 및 신인문학상 시상식’ 개최
“글은 작가의 얼굴”
수필 대상에 윤성민·우수상에 심지현·가작에 라나 라, 동시 우수상에 조혜민씨 수상
한국문인협회 워싱턴주 지부인 시애틀문학회(회장 박보라)가 2월 28일(토) 오후 2시 페더럴웨이 코앰TV홀에서 제19회 지부 설립기념식과 제19회 시애틀문학 신인문학상 시상식을 함께 개최했다. 사회는 박미라 씨가 맡았으며 구광일 주시애틀 문화영사, 엘리엇 김 윤성재단 이사장, 김인배 장로, 시애틀문학 후원자 김수현 등 회원 70여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기념식은 플룻 원호연과 피아노 마샤 카빈(Masha Khavin)의 개막 연주로 문을 열었다. 경희대학교를 졸업하고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교(UBC)에서 연주자 디플로마(Artist Diploma)를 취득한 원호연은 유라시안 오케스트라 단원, 밴쿠버 오페라 아파쇼나토 수석 플루티스트, 밴쿠버 한인문화협회 이사(2012~2014) 등을 거쳐 현재 시애틀에 거주하며 '더 원 플룻 스튜디오(The Won Flute Studio)'를 운영하고 있다.
연주자는 무대에서 클로드 볼링(Claude Bolling)의 '바로크 앤 블루(Baroque and Blue)'를 연주했으며, 행사 1부가 끝난 뒤에는 비제/보른(Bizet/Borne)의 '카르멘 판타지(Carmen Fantasy)'를 다시 선보여 참석자들의 큰 박수를 받았다. 엄경제 시인이 문학헌장을 낭독한 뒤 단상에 오른 박보라 회장은 "이민 생활 속에서 서로의 글을 통해 체온을 나눴기에 좀 더 따뜻한 삶을 누릴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한다"며 19년의 세월을 돌아봤다.
그는 협회 수필 분과에서 익명으로 글을 나누고 누구의 글인지 맞히는 실험을 했더니 회원들이 모두 단번에 글쓴이를 알아봤다는 일화를 소개하며 "글은 작가의 얼굴이자 삶 그 자체"라고 강조했다. 또한 협회 창립 발기인 10명 중 김학인, 김윤선, 안문자, 이춘혜, 문창국 등 5명이 지금도 협회를 지키고 있다며 특별한 감사를 전했다.
구광일 주시애틀 문화영사는 가족과 함께 자리에 참석해 "19번째 생일이면 내년 20주년은 굉장히 기념할 만한 행사가 되겠다"고 말하고, 출퇴근 버스 안에서 협회가 펴낸 '시애틀문학'을 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읽는다고 밝혔다. 그는 "영상에 익숙해진 시대에 문학 작품을 읽는 것이 굉장한 휴식을 준다"며 신인문학상 수상자들에게 진심으로 축하를 전했다.
한국문인협회 김호운 이사장은 영상 축사를 통해 "해외에서 그 나라의 언어와 문화를 접하며 한국어로 문학 활동을 하는 것은 국내 문인보다 큰 장점"이라며 "시애틀문학이 한국 문학의 해외화에 큰 역할을 담당해주리라 믿는다"고 밝혔다. 이날 동시 부문 심사를 맡은 권혁웅 한양여대 문화창작과 교수(대독 김소희)는 그리스 신화 속 이오(Io)의 이야기로 심사평을 열어 참석자들의 이목을 집중시켰다. 이오는 제우스에게 납치됐다가 헤라의 감시를 피하려 암소로 변신당한 소녀다.
말을 할 수 없게 된 그는 들판에서 아버지를 만나자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다가, 결국 발굽으로 땅바닥에 자신의 이름을 새겨 비로소 딸임을 알렸다. 르네상스 인문학자 토리는 이오라는 이름 속 'i(막대기)'와 'o(원)'만으로 세상의 모든 알파벳을 만들 수 있다고 주장했다. 즉 이오는 모든 문자를 낳은 어머니의 이름이라는 뜻이다.
권 교수는 이 신화를 빌려 "세상의 모든 문자는 민중의 이름 위에, 삶을 힘겹게 영위하는 모든 개별자들의 존재 위에 지어졌다"며 "영어권에 속한 미국에서 한국어로 쓰는 시는, 알아보지 못하는 이들 가운데 발굽으로 쓴 이오의 이름과 같다"고 설명했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로 가득한 미국 땅에서 한국어로 시를 쓴다는 것은,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상황에서도 '나 여기 있어요, 나는 살아있어요'라고 간절하게 자신의 존재를 새기는 행위 — 바로 이오가 발굽으로 자기 이름을 땅에 새긴 것과 같은 숭고한 몸짓이라는 의미다.
그는 당선작 조혜민의 '첫 수업'에 대해 "교실이라는 공간을 마음과 마음이 통하는 장소로 그려냈다"며 "더 많은 이름이 그녀의 손끝에서 발명되기를 바란다"고 심사평을 마무리했다.
수상자 조혜민은 "중년이 된 지금에야 이 상을 받게 됐다"며 특별한 인연을 소개했다.
"제가 17살 때 고 박완서 선생님께서 저희 고등학교에 오셔서 강연을 하셨어요. 선생님이 40세 중년의 나이에 처음 글을 쓰셨다고 하시더라고요. 그 말을 듣고 '나도 중년의 나이에 글을 쓰면 좋겠다'고 마음먹었는데, 이렇게 귀한 상을 받게 되어 감사합니다." 그는 재능을 주신 하나님과 한국·미국·캐나다 각지에서 응원해준 가족과 친구들에게 감사를 전하며 "앞으로 겸손하게 더 좋은 글을 많이 쓰겠다"고 다짐했다.
수필 부문에서는 가작에 라나 라의 '전설의 고향', 우수상에 심지현의 '암스테르담에 흩어진 오후 그 틈새 속', 대상에 윤성민의 '그리움, 한 장의 시화가 건너온 시간'이 각각 선정됐다. 심사를 맡은 김호운 이사장은 대상 작품에 대해 "중학교 시절 백일장에서 받았던 시화 한 장을 어머니가 보관했다가 분가하는 아들에게 건넨 사연을 담은 작품으로, 체험의 사유 공간을 문학으로 훌륭히 승화시켰다"고 평했다.
우수상을 받은 심지현은 "수상 소감을 발표할 거라는 공지를 전혀 받지 못해 많이 떨린다"며 웃음을 자아낸 뒤 "부족하지만 저에게는 너무나 과분한 상"이라고 했다. 그는 "시애틀에 온 지 이제 3년이 다 돼 가는데, 어떤 모임보다 이 협회 한 분 한 분의 따뜻한 분위기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며 "이 상을 작은 촛불 삼아 더 정진하라는 뜻으로 알고 열심히 하겠다"고 소감을 밝혔다.
대상을 수상한 윤성민은 "뜻밖의 대상 소식에 무척 기쁘다"고 말문을 연 뒤 "박보라 회장님 말씀을 들으면서 내 글의 지문, 즉 글쓰기의 정체성에 대해 한 번 더 깊게 고민해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밝혔다. 그는 "우연히 제 아내의 생일과 같은 날 시상식이 잡혔다"며 단상에서 "연수야, 생일 축하해"라고 말해 참석자들의 따뜻한 웃음을 이끌어냈다.
시상식에 이어 수상자들이 직접 작품을 낭독하는 시간이 마련됐으며, 엘리엇 김의 피아노 반주 속에 식사가 진행되며 행사가 마무리됐다. 시애틀문학회는 2007년 창립 이후 19년간 워싱턴주 한인 문학의 터전을 일궈왔다. 지난해 재외동포청이 주관하는 재외동포문학상에서 3명의 수상자를 배출했으며, 협회지 '시애틀문학' 18집은 한국문인협회 본부가 전국 120여 개 협회지 중 선정하는 최우수 협회지에 이름을 올렸다.
<시애틀코리안데일리>
![]()
박보라 회장과 전 회장들 및 주요 인사들이 창립기념 케이크의 촛불을 끄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