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앞둔 미국, 비자·이민 단속 논란 확산
“세계인의 축제라지만 일부 국가 팬들은 미국 입국부터 장벽”
전문가들, 비자 제한·ICE 단속 우려…이민자 공동체 불안 고조
2026 북중미 FIFA 월드컵 개막이 3주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개최국 미국의 강경한 이민정책이 국제 축제의 성공적인 운영에 변수로 떠오르고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오는 6월 12일 개막하는 2026 FIFA 월드컵은 사상 처음으로 48개국이 참가하고 미국·캐나다·멕시코가 공동 개최하는 역대 최대 규모의 대회다.
로스앤젤레스(LA)를 비롯한 미국 내 16개 도시가 개최지로 선정됐으며, LA에서는 6월 12일부터 7월 10일까지 총 8경기가 열린다. 잉글우드 소파이 스타디움은 대회 기간 ‘LA 스타디움’이라는 공식 명칭으로 운영되며, 미국과 파라과이의 개막전(6월 12일), 미국과 튀르키예 경기(6월 25일)를 포함해 조별리그 5경기와 32강전 2경기, 8강전 1경기가 개최된다.
LA시는 경기장뿐 아니라 도시 전역에서 월드컵 분위기를 조성하고 있다. 6월 11일부터 14일까지 LA 메모리얼 콜리세움에서 열리는 FIFA 공식 팬 페스티벌에서는 대형 스크린 중계와 라이브 공연, 문화 프로그램, 세계 음식 체험 행사 등이 진행될 예정이다. LA 한인타운 역시 한국 대표팀 경기 일정에 맞춰 대규모 거리 응원전을 준비하고 있다.
그러나 월드컵을 앞둔 미국의 비자 정책과 이민 단속 강화가 국제 방문객과 이민자 사회의 불안을 키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지난달 29일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가 주최한 언론 브리핑에서 이민법·인권 전문가들은 비자 발급 지연과 입국 제한, 국경 통제 강화,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이 대회 운영과 지역사회 안전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휴먼라이츠워치(Human Rights Watch)의 민키 워든 글로벌 이니셔티브 디렉터와 캐서린 라 푸엔테 아동권리 선임 코디네이터, 전미유색인지위향상협회(NAACP)의 자말 R. 왓킨스 전략·발전 담당 수석부회장, 이민정책연구소(Migration Policy Institute)의 아리엘 루이스 소토 선임정책분석가가 참석했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진정한 세계인의 축제가 되기 위해서는 연방정부와 FIFA, 개최 도시들이 국제 방문객과 이민자들의 안전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키 워든 디렉터는 “이번 대회는 역사상 가장 크고 포용적인 월드컵으로 홍보되고 있지만 비자 제한과 입국 금지 조치로 인해 일부 국가 팬들은 미국에서 열리는 경기를 직접 관람하는 것 자체가 어려운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세네갈, 코트디부아르, 아이티, 이란 등 월드컵 본선 진출국을 포함한 여러 국가가 미국의 비자 제한 정책 영향을 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이란 대표팀은 로스앤젤레스와 시애틀 등 미국 서부 도시에서 조별리그 경기를 치를 예정이지만, 이란 팬들과 언론인, 가족들의 미국 입국이 쉽지 않을 수 있다고 우려했다.
현재 미국 정부는 일부 국가 국민을 대상으로 최대 1만5,000달러의 비자 보증금을 요구하는 ‘비자 보증금 파일럿 프로그램’을 시행하고 있다. 이는 방문객들의 불법 체류를 방지하기 위한 조치지만, 국제 스포츠 행사 취지와 맞지 않는다는 비판도 제기되고 있다.
또한 FIFA가 월드컵 방문객을 위해 도입한 비자 신속 처리 프로그램인 ‘FIFA 패스(FIFA Pass)’ 역시 신청자가 지난달 말 기준 약 1만6,000명 수준에 그친 것으로 알려졌다.
이민정책연구소의 아리엘 루이스 소토 분석가는 “비자가 필요한 전체 방문객 규모를 고려하면 매우 적은 숫자”라며 “상당수 팬들이 여전히 기존의 복잡한 비자 절차와 강화된 심사를 거쳐야 하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이민단속 문제도 주요 쟁점으로 떠오르고 있다.
휴먼라이츠워치를 비롯한 인권단체들은 월드컵 기간 ICE 단속을 일시 중단하는 이른바 ‘ICE 휴전(ICE Truce)’을 요구하고 있다. 이는 올림픽 기간 분쟁 중단을 촉구하는 ‘올림픽 휴전’ 개념을 차용한 것으로, 이민자 가족들이 체포나 추방에 대한 두려움 없이 대회를 즐길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다.
실제로 휴먼라이츠워치에 따르면 지난해 뉴저지 메트라이프 스타디움에서 열린 FIFA 클럽월드컵 결승전 당시 한 망명 신청자가 자녀들과 경기를 관람하러 갔다가 경기장 주차장에서 ICE에 체포된 뒤 추방된 사례도 있었다.
캐서린 라 푸엔테 코디네이터는 “이미 개최 도시의 이민자 공동체에서는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조차 두려워하고 가족들이 외출을 꺼리는 분위기가 확산되고 있다”며 “월드컵이 이러한 공포를 더욱 키우는 계기가 되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전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는 행사인 만큼 경기장 내부에서 대규모 단속이 이뤄질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 거리 응원전과 팬 페스티벌 등 경기장 외부 공간에서는 여전히 주의가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NAACP의 자말 왓킨스 부회장은 “당국은 대규모 단속 계획이 없다고 말하지만 실제 현장에서는 가족 분리와 과잉 단속 사례가 반복돼 왔다”며 “방문객과 이민자들은 휴대전화 보안을 강화하고 이동 계획을 가족과 공유하는 한편, 자신의 법적 권리를 미리 숙지해 둘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은 월드컵이 성공적인 국제 축제로 자리매김하기 위해서는 경기 운영뿐 아니라 참가국 팬들과 이민자 공동체 모두가 안전하고 환영받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