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홍역 35년 만에 최악의 확산
전문가들, "백신 예방접종 통한 집단면역 회복이 최선의 예방책"
백신 접종률 하락·허위정보 확산 영향…성인·임신부 감염도 증가
미국에서 한때 퇴치된 것으로 선언됐던 홍역(Measles)이 35년 만에 가장 심각한 수준으로 확산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전문가들은 바이러스 변이가 아닌 백신 접종률 하락이 가장 큰 원인이라며, 예방접종을 통한 집단면역 회복이 무엇보다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는 지난 10일 감염병 전문가들이 참석한 가운데 홍역 재확산 현황과 예방법을 주제로 언론 브리핑을 개최했다.
이날 브리핑에는 팻시 스틴치필드 홍역협력체(Measles Collaborative) 사무총장과 벤저민 뉴먼 텍사스 A&M대학교 생물학과 교수, 앤드루 파비아 유타대학교 소아감염병학과장, 호세 로메로 전 아칸소주 보건장관 등이 참석했다. 로메로 전 장관은 미국 질병통제예방센터(CDC) 국립면역·호흡기질환센터장과 예방접종자문위원회(ACIP) 위원장을 역임한 감염병 전문가다.
CDC에 따르면 올해 7월 2일 현재 미국에서 공식 보고된 홍역 환자는 2,170명으로 최근 35년 동안 가장 많은 수치를 기록했다. 최근 18개월간 누적 환자도 4,459명에 달했으며, 텍사스와 유타, 사우스캐롤라이나 등 여러 주에서 집단감염이 이어지고 있다.
▲"바이러스보다 접종 공백이 문제"
전문가들은 이번 유행의 가장 큰 원인으로 백신 접종률 감소를 꼽았다.
스틴치필드 사무총장은 "홍역이 다시 유행하는 것은 바이러스가 강해졌기 때문이 아니라 사회가 예방접종의 중요성을 잊고 접종 공백을 만들었기 때문"이라며 "홍역은 백신 접종률이 몇 퍼센트만 낮아져도 면역력이 없는 사람을 찾아 매우 빠르게 확산되는 감염병"이라고 설명했다.
미국은 2000년 홍역의 국내 토착 전파가 중단됐다고 선언했지만, 해외에서는 여전히 홍역이 유행하고 있어 해외 유입 사례는 계속 발생하고 있다.
문제는 지역사회의 예방접종률이 집단면역 기준인 약 95% 아래로 떨어질 경우 해외에서 유입된 감염자가 지역사회 대규모 확산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 기간 예방접종이 지연된 데다 백신에 대한 허위정보 확산과 의료 접근성 격차까지 겹치면서 일부 지역의 접종률은 크게 낮아졌다.
특히 일부 이민자 가정에서는 신분 노출이나 이민 단속을 우려해 병원 방문을 미루면서 자녀들의 정기 예방접종을 놓치는 사례도 증가하고 있는 것으로 지적됐다.
▲실제 감염자는 공식 통계보다 훨씬 많을 수도
전문가들은 실제 감염 규모가 공식 집계보다 훨씬 클 가능성도 제기했다.
현재 홍역 환자는 대부분 PCR 검사로 확진된 사례만 통계에 포함된다. 하지만 한 가족에서 첫 번째 환자가 확진된 이후 다른 가족이 동일한 증상을 보여도 추가 검사를 받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
유타대학교 연구진은 수학적 모델을 통해 공식 환자가 700명이라면 실제 감염자는 1,400~2,800명에 이를 수 있다는 분석 결과를 소개했다.
▲폐렴·뇌염까지 일으키는 위험한 전신 감염병
홍역은 단순히 발진이 생기는 소아 질환이 아니라 폐와 장, 뇌, 신경계까지 침범하는 전신성 바이러스 감염병이다.
초기에는 고열과 콧물, 기침, 결막염, 식욕 저하, 심한 피로감 등이 나타나며 이후 전신 발진이 발생한다. 심한 경우 폐렴과 탈수, 뇌염으로 진행될 수 있으며 시력이나 청력을 잃을 수도 있다. 환자 1,000명 가운데 약 3명이 사망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홍역 바이러스는 기존 면역 기억 일부를 손상시키는 이른바 '면역 기억상실(Immune Amnesia)'을 일으킬 수 있어 회복 후에도 1~2년 동안 다른 감염병에 쉽게 걸릴 위험이 높아질 수 있다고 전문가들은 설명했다.
▲성인 환자도 꾸준히 증가
홍역이 어린이 질환이라는 인식과 달리 성인 환자도 빠르게 증가하고 있다.
올해 미국 홍역 환자 가운데 20세 이상 성인은 625명으로 전체의 약 4분의 1을 차지했다.
최근 50명 이상이 입원한 유타주의 경우 환자의 약 3분의 1이 성인이었다.
특히 20세 이상 성인과 5세 미만 어린이는 중증으로 진행될 위험이 높으며, 임신부는 더욱 주의가 필요하다. 임신 중 홍역에 감염되면 산모가 중증으로 악화될 가능성이 높고 출산 직전 감염될 경우 태아나 신생아에게 바이러스가 전파될 수도 있다.
실제로 캐나다 온타리오에서는 출산 직전 홍역에 걸린 산모에게서 태어난 신생아 3명이 숨진 사례도 보고됐다.
▲의료진도 경험 부족…"홍역 진료해 본 의사가 드물다"
파비아 교수는 "현재 미국에서 진료하는 상당수 의료진은 이번 유행 이전까지 실제 홍역 환자를 한 번도 본 적이 없을 것"이라며 "2000년 이후 수련받은 의사들은 교육 과정에서도 홍역을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았다"고 말했다. 현재 미국에서 유행하는 바이러스는 주로 D8 유전형으로, 지난해 텍사스에서 확인된 바이러스와 거의 동일한 계통인 것으로 분석됐다.
▲"MMR 백신 2회 접종 시 예방효과 약 97%"
전문가들은 홍역 예방의 가장 확실한 방법으로 MMR(홍역·볼거리·풍진) 백신 2회 접종을 강조했다.
생후 12개월 이후 권장 일정에 따라 두 차례 접종하면 예방 효과는 약 97%에 이른다.
한국 등 해외에서 적절한 시기에 공인된 백신을 접종한 이민자 역시 미국에서 접종한 사람과 동일한 수준의 예방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
전문가들은 접종 기록이 확실한 건강한 성인은 별도의 항체검사나 추가 접종이 필요하지 않다고 설명했다. 반면 접종 여부가 불확실하거나 기록을 확인할 수 없는 경우에는 항체검사보다 백신을 한 차례 추가 접종하는 것이 현실적일 수 있다고 조언했다.
스틴치필드 사무총장은 "해외여행뿐 아니라 미국 국내여행을 계획할 때도 가족 모두의 예방접종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특히 임신을 계획하는 여성은 임신 전에 면역 여부와 접종 기록을 반드시 확인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전문가들은 또 홍역 감염 후 드물지만 7~10년 뒤 치명적인 퇴행성 신경질환인 아급성 경화성 전뇌염(SSPE)이 발생할 수 있다며, 특히 생후 2세 미만 영아가 홍역에 감염될 경우 위험이 더욱 높아 예방접종을 통한 사전 예방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