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제의 인물-김혁찬 대령) “믿고 순종할 때 능력 주시는 하나님임을 확신해야”


(화제의 인물-김혁찬 대령) “믿고 순종할 때 능력 주시는 하나님임을 확신해야”


대한민국 특전사 장교 출신 미 육군 김혁찬 대령, 하와이에서 군목으로 근무

39살의 나이에 미 육군 입대…61살의 나이에 대령 진급 후 3년 정년 연장도


지난 11월 8~10일 텍사스주 달라스에서 열린 ‘제4차 대한민국 학사장교동문회 북미주지구회 총회’에 참석한 회원 중에 복장부터 유독 특이한 1명이 눈에 띄었다. 그 주인공은 김혁찬씨로, 김혁찬씨는 한국에서 육군학사장교 출신으로 특전사에서 복무했던 이력을 가진 현역 미국 육군 대령으로, 현재 하와이 호놀룰루에서 군목으로 근무하고 있다. 


그는 다른 회원들이 육군학사장교 예복을 입고 있었던데 반해 미 육군 정복에 대령 계급장을 달고 있어 눈에 띄었다. 김혁찬 대령의 미 육군 입대기를 보면 더욱 이채롭다.


한국에서 대학교를 졸업한 후 지난 1986년 대한민국 육군학사장교 6맥 8기로 군에 입대해 특전사에서 근무했던 김혁찬 대령은 전역 후 27살의 나이에 미국 유학길에 오른다.


미국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에 정착한 김 대령은 호텔경영학과에서 회계학을 공부했다.

그러던 김 대령의 삶에 일대 변혁이 일어난다.


회계학을 공부하던 김 대령이 신학을 공부하게 된 것.

김혁찬 대령은 “어느 날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신학을 공부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이렇게 신학을 마친 김 대령은 목사 안수를 받고 라스베이거스 지역에서 10여 년간 목회 활동을 하게 된다.

김 대령은 “내가 어디 살든지 무엇을 하든지 하나님이 나와 함께한다는 확신이 있어야 만족을 느끼고 목표를 달성할 수 있다”고 말한다.


이렇게 목회를 하던 김혁찬 대령은 기도 중 하나님으로부터 군대에 가라는 기도 응답을 받게 된다.

그러나 그는 바로 실천에 옮기지 않는다. 그는 당시를 회고하며, “하나님이 저에게 군대에 가라고 하시는데 전 하나님에게 ‘내일모레면 40인데 군대를 가라고요? 그것도 미국 군대를요? 저는 못 갑니다’라고 반항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김 대령은 계속해서 똑같은 기도 응답을 받게 되며, 마침내 39살의 나이로 미국 육군에 군종장교로 입대하게 된다. 이렇게 그의 삶은 라스베이거스의 교회에서 미국 군대로 옮겨가게 된다.

늦어도 한참 늦은 나이의 입대였지만, 그에게는 대한민국 장교로서의 군 경험이 크게 도움이 됐다.


특히 ‘안 되면 되게 하라’는 한국 특전사의 구호와 100회 이상의 고공강하 경력, 특전사 교관으로서 장병들과 소통하던 경험이 미군 군목 생활에도 큰 도움이 됐다고 그는 말한다. 어려운 훈련을 받고 군목 생활을 시작한 그는 또 한 번 생활지를 옮기게 된다. 입대한 지 얼마 안 돼 이라크 전쟁이 터지면서 이라크 전쟁터로 생활지가 바뀌게 된 것.


김혁찬 대령은 “처음에 명령을 받았을 때는 청천벽력 같은 이야기였지만, 이라크 전쟁터에서 적응하며 하나님의 놀라운 섭리를 발견하게 됐다”며 “처음에는 하나님의 명령이 황당한 계획 같았지만, 그것에 순종할 때 능력 주시고 평안 주시고, 새로운 삶을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고 고백한다.


김 대령은 “이라크에서의 삶을 통해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더욱 커지게 되는 경험을 하게 됐다”며 “하나님이 주신 능력으로 이라크에 파병된 군인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했더니, 밖에서보다 더욱 빨리 회계하는 역사가 그들로부터 일어났다”고 고백하고, “이렇게 이라크에서 하나님의 크신 섭리를 깨닫고 자대에 복귀한 후, 하나님의 크신 뜻을 알게 된 사건이 연속해서 일어났다”고 말을 이어갔다.


김혁찬 대령은 “입대 처음에는 의무복무기간만 하고 전역하려 했고, 20여 년 군 생활 후 나이 정년에 걸려 어쩔 수 없이 전역서를 내려 할 때도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이곳에서 저를 쓰시려고 하시는 하나님은 순간순간마다 군 생활을 계속 이어갈 수 있게 해주셨다”며, “하나님의 계획을 우리가 알 수 없지만, 그저 ‘아멘’하고 믿고 순종할 때 능력 주시는 하나님임을 확신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 대령은 사실 의무복무기간을 마치고 11년 반 동안 몸담았던 라스베이거스의 교회로 복귀하려던 계획을 갖고 있었다. 그러나 전역 6개월을 남기고 큰 사건이 일어났다. 부목사로 있던 라스베이거스 교회의 담임목사가 소천하며 사회로의 복귀 대신, 군 생활을 연장하게 된 것. 


그래서 그는 전역 신청을 철회하고 군 생활을 이어가게 된다. 그렇게 세월이 흘러 중령 계급장을 달기까지 20년 넘게 군 생활이 이어졌고, 이제 내년 4월이면 62세가 돼 미 공무원 규정에 의해 더 이상 군 생활을 할 수 없게 됐다. 그러나 또 한 번, 어쩌면 군 생활에 있어서 마지막이 될 놀라운 일을 경험하게 된다.


김혁찬 대령은 “이제 나이 정년을 얼마 남겨 놓지 않아서 전역 신청을 하려는데 대령 진급을 하게 되고, 육군본부의 승인을 받으면 68세까지 군 생활을 연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주변 목사님들로부터 들어 처음 알게 됐다”며 “끝날 때까지 끝난 게 아니니 전역 신청서를 내지 말고 기다려보라는 주변 목사님들의 권유가 있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동료들의 권유대로 전역서 대신 3년 연장 신청을 하고 기다리던 김 대령에게 낭보가 전해졌다.

정년 연장이 육군본부로부터 승인돼 앞으로도 3년여 기간 동안 하나님의 사역을 군에서 할 수 있게 된 것.


그는 “전역서를 내려고 할 때 또 한 번 하나님께서 막으셨다”며 “예수님이 연회에 갔을 때 포도주가 떨어졌는데 물이 포도주로 변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밑동까지 다 잘려진 나무에서 새싹이 돋는 이사야서 6장의 말씀처럼, 군 생활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는데 거기서 조그만 싹이 자라서 대령으로 승진했고, 또 전역하려고 했는데 3년 더 군복무를 연장하게 됐다”고 고백한다.


김 대령은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 ‘너를 쓰겠다’는 하나님의 계획에 ‘아멘’으로 받아들이면 하나님께서 능력도 주시고, 길도 열어주시고, 사람도 만나게 해주신다”라며 “개인은 물론, 한 나라의 정치도 우리의 계획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계획대로 이루어지는 것”이라고 힘주어 말한다.


그는 이어 “저도 호텔경영학을 전공하며 호텔에서 일하려고 했지만, 하나님 나라의 호텔, 영원한 나라를 준비하는 그 일로 불러주셨는데 그게 얼마나 감사하고 영광인지 모른다”며 “하나님의 그런 목적을 발견하고 지금까지 생업과 자녀들을 위해 애썼다면 진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무엇을 할 것인가, 내가 소속된 자리에서 생각하고 기도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슬하에 아들 둘과 딸 하나 삼 남매를 둔 김혁찬 대령은 삼 남매 모두 미국 공군 장교로 키웠다. 

김혁찬 대령의 군 생활 연장으로 미국에서 흔치 않은 ‘한 가족 4명의 미 군 장교 가정’을 이어가게 된 김혁찬 대령은 오늘도 즐겁고 힘차게 하루의 삶을 시작했다.     박재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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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육군 군목 김혁찬 대령 부부와 공군사관학교 졸업 뒤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삼남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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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찬 대령 부부가 대령 진급식을 마친 후 공군 장교로 복무 중인 자녀들과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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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찬 대령의 한국 특전사 장교 시절 모습. <미국 육군 공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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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찬 대령이 지난 11월 8~10일 달라스에서 열린 ‘제4차 대한민국 학사장교동문회 북미주지구회 총회’ 3번째 날인 10일 조찬 기도회 및 예배에서 설교를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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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혁찬 대령의 프로필 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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