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멕시코 관계, 트럼프 시대 외교 모델로 주목
멕시코 셰인바움 대통령 선제 대응으로 관세 갈등 완화
펜타닐 밀매 단속·불법 이민자 추방 등 미국 요구 수용
도널드 트럼프 2기 행정부의 관세 정책을 통한 압박 외교로 국제 정세가 요동치고 있는 가운데, 미국과 안정적인 관계를 맺고 있는 멕시코의 외교 전략이 주목받고 있다. 트럼프 대통령과 대립하거나 고개를 숙이는 태도로 임하는 국가들과 달리, 조용히 자국의 이익을 챙기고 있기 때문이다.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는 지난 4월 25일 ‘미-멕시코 관계와 트럼프 시대 외교 모델’을 주제로 전문가 초청 언론 브리핑을 열고, 미국의 관세 조치에 일부 유예와 예외를 이끌어낸 클라우디아 셰인바움 멕시코 대통령의 외교 전략과 리더십을 조명했다.
이날 참석한 전문가들은 셰인바움 대통령이 미국에서 새로운 관세 정책을 발표할 때마다 즉각적이고 공격적인 대응을 피하는 대신, 냉정하고 실용적인 협상 전략을 구사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와의 관세 갈등을 피했다고 분석했다.
실제로 셰인바움 대통령은 지난 2월 3일, 미국이 멕시코산 제품에 25% 관세를 부과하기로 한 시행일을 하루 앞두고 자신의 소셜미디어 계정을 통해 북부 국경 강화 조치를 발표했다. 그는 미국을 향하는 불법 이민자 단속과 펜타닐 밀매를 차단하기 위해 1만 명의 국가경비대를 투입하겠다는 계획을 밝히며, 트럼프의 주요 요구사항을 선제적으로 수용했다.
이에 미국은 멕시코에 대한 관세 부과를 유예하고 양국의 고위급 협상을 재개했다. 또한 평소 국제 무대에서 거침없는 발언과 압박 외교를 일삼던 트럼프 대통령은 셰인바움 대통령을 향해 “놀라운 여성”이라고 공개적으로 찬사를 보냈다. 이는 양국 간 이념 차이에도 불구하고 실용적인 관계가 강화되었음을 보여준다.
셰인바움 대통령은 좌파 성향의 모레나당(MORENA) 소속이다.
래리 루빈 미국-멕시코협회 회장은 “셰인바움 대통령은 미국에 감정을 내세우기보다 요구사항을 선제적으로 이행하고, 무엇보다 인내심을 갖고 냉정하게 대처하고 있다”며 “양국이 서로의 최대 무역 파트너임을 인식하고, 이러한 경제적 상호의존 관계를 정치적으로 강화했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은 이러한 셰인바움 대통령의 전략이 내부적으로 진행 중인 국가 개혁을 추진하는 데에도 중요한 기반이 되고 있다고 평가했다.
지지율이 88%에 달하는 셰인바움 대통령은 현재 멕시코 국내에서 대규모 개혁을 추진하고 있다. 자국 내 산업 기반을 강화해 국내 공급망을 구축하는 내수시장 활성화와 소비 촉진 전략을 담은 장기 경제 발전 계획안 ‘플란 멕시코’가 대표적이다. 또한 기업 투자 관련 규제를 완화하고 민간 투자에 대한 인센티브를 강화해 경제 성장을 촉진한다는 계획이다.
스탠퍼드대 프리먼 스폴리 국제학연구소 교수이자 라틴아메리카연구소 전임 소장인 알베르토 디아즈-카예로스 교수는 정치경제학자 앨버트 허쉬만이 1945년 발표한 연구를 인용해 “트럼프 대통령은 관세를 이용해 이웃 국가들과 연합을 형성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수단으로 삼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트럼프도 중국과의 관계가 불확실한 가운데, 미국 자본이 멕시코에 유입되고 있는 현실을 인식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멕시코는 2023년부터 중국을 제치고 미국의 최대 교역국으로 올라선 상태다. 양국 간 교역 규모는 2024년 기준 8,400억 달러로, 같은 해 중국과의 교역액 5,820억 달러를 크게 웃돌았다.
집권 2기 출범 100일을 맞은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국내에서 시도한 여러 정책 변화에 따른 반발과 지지율 하락을 직면하고 있다. *뉴욕타임스*와 시에나대학의 최신 여론조사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의 전체 국정 운영 지지율은 42%에 불과했다. 특히 트럼프 대통령의 핵심 지지 기반이었던 경제 정책에 대한 지지도는 43%로, 유권자들 사이에서 신뢰가 악화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와 관련해 남가주 지역을 기반으로 활동하는 루이스 알바라도 정치 분석가는 “멕시코에게 이번 외교는 경제 안정, 이민 정책, 국가 자존심이 걸린 문제이며, 미국에게는 지역 내 핵심 동맹국과 불필요한 마찰 없이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중요하다”며 “양국은 이념 차이를 넘어 실용적이고 전략적인 관계를 구축해 나가고 있다. 이는 상호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고 평가했다.
미국-멕시코 외교 관계가 안정되면서, 국경 지역 및 멕시코에 진출한 기업들에 대한 투자 환경도 나아질 것이라는 전망도 이날 제기됐다. 디아즈-카예로스 교수는 “1994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체결 이후 멕시코에 이어진 미국의 대규모 투자를 주목해야 한다”며 “현재 멕시코는 단순 조립 생산(마킬라도라) 국가를 넘어 고급 제조업과 항공우주, 의료기기 산업 등 첨단 산업 분야에서도 경쟁력을 갖춘 국가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루빈 회장도 “멕시코 인구의 평균 연령대가 미국보다 20살 더 젊다. 이는 주요 제조업과 서비스 산업에 풍부한 노동력을 제공할 수 있는 장점으로 꼽힌다”며 앞으로도 미국과 실용적인 관계가 이어질 것으로 전망했다.
한편, 로욜라메리마운트대 리비센터의 데이비드 아용 수석연구원은 “2015년 대선을 앞둔 트럼프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을 ‘역대 최악의 협상’이라고 비판했을 때, 엔리케 페냐 니에토 당시 멕시코 대통령은 트럼프를 멕시코로 초청하는 우회 전략을 구사했다”면서 멕시코의 외교 모델이 다른 나라에도 적용될 가능성을 언급하기도 했다.
아용 수석연구원은 “현재 양국 간 토마토 관세 문제 등 일부 갈등이 남아 있지만, 멕시코 정부는 유화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다”며 “또한 긴장 완화를 위해 멕시코 국경 지역에서 미국 무인정찰기 비행을 허용하는 등, 외교적으로 압박을 높이기보다는 트럼프를 안심시키는 방향으로 외교 전략을 펴고 있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