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코마한인회서 열린 워싱턴주 노동법 세미나…임금·병가·산재·이민신분까지 꼼꼼 안내
“모르면 손해, 알아야 지킨다”
워싱턴주 노동산업부(L&I)가 10일 오전 타코마한인회관 대회의실에서 한인 근로자와 소상공인을 위한 노동법 세미나를 열고, 현장에서 자주 발생하는 임금·병가·산재·안전 문제를 한국어로 자세히 설명했다. 궂은 날씨에도 30여 명의 참석자가 자리를 채우며, 평소 궁금했지만 쉽게 묻지 못했던 질문들이 쏟아졌다.
행사는 김창범 타코마한인회장의 환영 인사로 문을 열었다. 김 회장은 “날도 좋지 않은데 이렇게 많이 오신 것은 그만큼 현장의 정보가 절실하다는 뜻”이라며 “오늘 들으신 내용을 주변 교회, 친지, 동료들에게도 꼭 나눠 달라”고 당부한 뒤, L&I 한인 담당관 김지원 상담관을 소개했다.
김 상담관은 자신을 “워싱턴주 노동산업부에서 한인 커뮤니티를 전담하는 상담관”이라고 소개하며, 먼저 L&I의 역할부터 짚었다.
그는 “L&I는 워싱턴주에 있는 모든 비즈니스와 근로자가 안전하게 일할 수 있도록 노동법과 근로기준법을 관리하고 교육하고 집행하는 주정부 기관”이라며 “회사 규모, 업종, 직원 수와 상관없이 ‘고용주와 근로자 관계’가 형성되는 곳이면 모두 L&I 법의 적용을 받는다”고 설명했다.
참석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한 부분은 최저임금과 초과근무 수당이었다.
김 상담관은 먼저 “2026년 1월 1일부터 워싱턴주 최저임금은 시간당 17달러 13센트로 인상된다”고 알렸다. 2025년 16달러 66센트에서 47센트가 오르는 셈이다.
그는 “워싱턴주 전체 기준이 17달러 13센트지만, 시애틀처럼 자체적으로 더 높은 최저임금을 정한 도시들이 있다”며 “시애틀시는 내년부터 시간당 21달러 30센트를 적용하게 된다”고 설명했다.
렌튼, 시택, 벨링햄 등 일부 도시도 주 최저임금보다 높은 기준을 두고 있어 “내가 일하는 도시의 최저임금이 얼마인지 꼭 확인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초과근무 수당에 대해서도 분명히 선을 그었다.
“시간제로 일하는 근로자가 한 주에 40시간을 넘기면, 초과된 시간에 대해서는 시급의 1.5배를 받아야 합니다. ‘해야 한다’가 아니라 ‘법으로 정해져 있는 사항’입니다.”
또한 급여 지급 방식에 대해서도 “최소한 한 달에 한 번 이상, 급여명세서(페이롤)와 함께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아야 한다”며 “두세 달 밀렸다가 한꺼번에 주는 것은 모두 위법”이라고 못박았다. 급여명세서에는 시급, 총 근무시간, 공제 내역, 그리고 유급병가(페이드 식 리브) 잔액까지 반드시 표시되어 있어야 한다는 점도 덧붙였다.
청소년 노동에 대한 경고도 이어졌다. 김 상담관은 “18세 미만 청소년을 고용할 때는 나이 확인, 별도 허가서, 부모 동의 등 성인과 전혀 다른 규정을 따라야 하며, 시켜서는 안 되는 위험 업무도 세세히 정해져 있다”며 “이를 어기면 성인 근로자 위반보다 훨씬 무거운 처벌을 받게 된다”고 주의를 당부했다.
세미나 내내 참석자들의 메모가 가장 분주했던 부분은 유급병가 설명이었다.
김 상담관은 “한인들이 혜택이 있음에도 가장 많이 놓치는 제도가 바로 유급병가”라며 말문을 열었다. “워싱턴주에서 일을 하는 대부분의 근로자는, 아주 예외적인 직군을 제외하면 모두 유급병가를 법적으로 받을 권리가 있습니다. 40시간 일할 때마다 유급병가 1시간이 쌓이도록 돼 있고, 이 내용은 매번 급여명세서에 표시되어야 합니다.”
유급병가는 입사 후 90일이 지나면 사용할 수 있다. 사용 범위도 넓다.
“내가 아플 때는 물론이고, 가족이 아플 때, 같이 사는 사람이 아플 때, 심지어 함께 살지는 않지만 내가 돌봐야 하는 가족을 병원에 모시고 가야 할 때도 쓸 수 있습니다. 요즘은 정신적인 번아웃이나 스트레스로 하루 쉬어야 할 때도 유급병가 사용이 가능하도록 법이 계속 개정되고 있습니다.”
다만 유급병가는 무한정 쌓아 두는 제도가 아니다. 1년이 지나면 최대 40시간까지만 다음 해로 이월되고, 나머지는 소멸된다. “예를 들어 유급병가가 60시간 쌓여 있는데 12월 말까지 쓰지 않으면, 새해가 되면 40시간만 남고 20시간은 사라집니다. 돈으로 돌려받을 수도 없기 때문에, 연말에는 반드시 본인의 유급병가 잔여시간을 확인하셔야 합니다.”
그는 또 “일반 휴가(Vacation)는 회사가 줄 수도, 안 줄 수도 있는 ‘복리후생’이지만, 유급병가는 법에 명시된 ‘권리’”라며 “두 제도를 혼동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강조했다.
김 상담관이 가장 안타까운 사례로 꼽은 것은 산재보험(Workers’ Compensation)을 몰라서 제때 신청하지 못한 경우였다.
“일하다 크게 다친 지 몇 년이 지나 몸은 망가졌는데, 당시 산재보험이 있는지도 몰라 아무 신청도 못 했던 분들이 지금도 전화를 많이 하십니다. 이미 신청 기한 1년을 훌쩍 넘긴 뒤라 도와드릴 수 있는 방법이 없을 때, 상담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정말 마음이 아픕니다.”
워싱턴주에서는 직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사업주는 의무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근로자가 일하다 다치거나, 일과 관련된 질병을 얻었을 때 L&I를 통해 치료비와 일정 부분의 임금 보상을 받을 수 있다. “일하면서 다쳤다면, 첫 번째 단계는 무조건 병원에 가는 것입니다. 어느 병원이든 괜찮습니다. 의사가 ‘일하다 다친 사고’라는 사실을 확인하면, 그 의사가 L&I에 사고 보고서를 제출하고 그때부터 산재보험 절차가 시작됩니다.”
사고로 인해 3일 이상 일을 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통상 기존 임금의 60~70% 정도를 보상받게 된다. 다만 사고 발생 후 1년 안에 신청해야 하며, 일과 관련된 질병(예: 장기간 유해 환경 노출로 인한 폐질환 등)은 증상이 드러난 때로부터 2년 안에 신청해야 한다.
“정부 기관의 기한은 하루만 지나도 연장이 안 됩니다. ‘1년하고 하루’가 되면 아무리 억울해도 산재 혜택을 받을 수 없다는 걸 꼭 기억하셔야 합니다.”
사업주 역시 산재보험의 법적 의무를 가볍게 여겨서는 안 된다. 직원이 병원에서 ‘일하다 다쳤다’고 진술하면, 의사가 제출한 보고서를 통해 해당 사업장의 산재보험 가입 여부가 바로 확인되기 때문이다.
“직원을 고용하면서 산재보험을 가입하지 않았다면, 나중에 직원이 다쳤을 때 치료비와 벌금까지 모두 사업주에게 돌아가게 됩니다.”
강의 후반부에는 불법체류 신분 근로자의 권리를 설명하는 대목에서 큰 관심이 쏠렸다. 김 상담관은 “이 부분이야말로 가장 많이 오해하고 있는 부분”이라며 목소리를 높였다.
“워싱턴주에서는 합법 신분이든, 신분이 불안정하든 상관없이 오늘 말씀드린 최저임금, 유급병가, 산재보험, 안전한 근로환경에 대한 권리가 모두 똑같이 적용됩니다. ‘나는 불법체류라 신고도 못 한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은데, 사실과 다릅니다.”
그는 “일부 사업주들이 ‘신분이 안 되는 사람만 쓰면 신고 걱정을 안 해도 된다’고 착각하는데, 아주 잘못된 생각”이라며 “L&I는 고용 형태와 일을 한 사실만을 기준으로 사건을 처리한다”고 강조했다. “L&I는 소셜시큐리티 번호를 요구하지 않습니다. 신분 증명도 따로 받지 않습니다. 본인의 이름과 연락처, 일한 사업장의 정보만 있으면 신고와 상담이 가능합니다. 언어와 신분 때문에 본인의 권리를 포기하지 마시길 바랍니다.”
김 상담관은 이날 세미나에서 “영어가 불편한 한인들을 위해, 전화 상담·통역·문서 번역 등 모든 서비스를 무료로 제공하고 있다”며 본인의 명함을 참석자들에게 나누어 주었다.
“L&I에 전화를 하시거나 편지를 받으시면 ‘Korean, please’라고 요청하셔도 됩니다. 저 같은 한인 담당관뿐 아니라, 공식 통역 시스템을 통해 한국어 통역·번역을 모두 무료로 지원하고 있습니다.
영어를 못 해서 권리를 포기하는 일은 더 이상 없어야 합니다.”
질의응답 시간에는 청소년 고용 시 주의사항, 휴게·식사시간 규정, 위험한 작업 환경 신고 방법 등 현장에서 바로 적용할 수 있는 질문이 이어졌다. 세미나가 끝날 무렵, 김창범 회장은 다시 단상에 올라 감사 인사를 전하며 다음 일정을 소개했다.
“오늘 노동법 세미나가 많은 도움이 되셨다면, 다음 주에도 꼭 다시 오십시오. 17일 같은 시간, 같은 장소에서 이민단속(ICE)에 대응하는 방법과 우리 권리를 어떻게 지킬 수 있는지에 관한 세미나를 준비했습니다. 주변에 관심 있는 분들을 꼭 한 분씩 더 모시고 와 주시면 좋겠습니다.”
세미나는 타코마한인회가 준비한 점심 식사를 함께 나누며 마무리됐다.
참석자들은 “그동안 막연하게만 알고 있던 노동법이 구체적으로 이해됐다”, “특히 유급병가와 산재보험, 신분과 상관없는 권리 보호에 대해 큰 위로와 용기를 얻었다”며 입을 모았다.
박재영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