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 판결 후 남부지역 선거구 재획정 확산


대법원 판결 후 남부지역 선거구 재획정 확산

흑인 표심 약화 논란 속 아시안 등 소수계 대표성 축소 우려

“학교·치안·주거 정책까지 영향…장기적 시민 참여 중요”


연방대법원이 루이지애나주의 흑인다수 연방하원 선거구 지도를 위헌으로 판단한 이후 미국 남부 지역에서 선거구 재획정 움직임이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투표권 단체들은 이번 판결이 흑인 유권자에게 가장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지만, 장기적으로는 아시안과 라틴계, 원주민 등 소수계 유권자의 정치적 대표성 약화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이번 판결이 단순히 특정 선거구의 문제가 아니라, 그동안 소수계 유권자의 정치적 영향력을 보호해온 연방 투표권법(Voting Rights Act) 2조의 실효성을 흔드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지난달 29일 연방대법원은 ‘루이지애나 대 칼레이(Louisiana v. Callais)’ 사건에서 흑인다수 선거구 2곳을 포함한 루이지애나 연방하원 선거구 지도가 인종을 과도하게 고려해 작성됐다며 위헌 판단을 내렸다. 판결 자체가 투표권법 2조를 폐지한 것은 아니지만, 소수계 유권자의 표가 희석됐다는 점을 법정에서 입증하는 문턱을 크게 높였다는 평가가 나온다.


American Community Media(ACoM)가 지난 15일 개최한 언론 브리핑에서 남부사회정의연합의 미첼 브라운 선임변호사는 “1982년 의회는 차별 의도를 직접 입증하지 않더라도 선거구가 소수계 표를 약화시키는 효과를 보이면 문제를 제기할 수 있도록 법을 개정했다”며 “하지만 이번 판결은 사실상 의도적 차별까지 입증해야 하는 수준으로 기준을 높였다”고 지적했다.


브라운 변호사는 또 “입법자들이 공개적으로 ‘흑인이나 라틴계, 아시안 유권자의 표를 약화시키기 위해 선거구를 그렸다’고 말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며, 향후 소송 과정에서 차별 의도를 입증하기가 매우 어려워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판결 이후 일부 남부 주에서는 이미 혼란이 나타나고 있다. 루이지애나주는 판결 직후 진행 중이던 연방하원 선거 절차를 중단했다. 루이지애나 공공서비스위원회의 드반테 루이스 위원은 “이미 4만2천 명의 유권자가 우편 또는 부재자 투표를 마친 상황에서 선거를 중단한 것은 전례 없는 일”이라고 비판했다.


그는 이어 루이지애나 주상원이 기존 흑인다수 선거구 2곳을 1곳으로 줄이는 새 지도를 통과시켰으며, 재획정 자료에서 인종별 투표 가능 인구 정보까지 제외되면서 각 선거구의 실제 인종 구성조차 파악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조지아와 앨라배마에서도 재획정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Brian Kemp 조지아 주지사는 특별회기를 소집해 연방하원과 주상·하원 선거구를 다시 그리도록 했다. 시민단체들은 이 과정에서 흑인 영향력 선거구가 줄어들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


앨라배마 역시 이번 판결의 영향을 받을 전망이다. 남부빈곤법센터의 제롬 디스 국장은 “앨라배마 인구의 약 27%가 흑인이지만, 흑인 유권자가 선출하고자 하는 후보를 의회에 보낼 수 있는 선거구가 줄어들 위험이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선거구 재획정이 단순한 정치권의 의석 경쟁을 넘어 주민 생활 전반에 영향을 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주의회와 시의회, 교육위원회, 카운티 위원회 등의 대표성이 바뀌면 학교 예산과 학생 징계 정책, 교육과정, 치안, 주거, 복지 예산 등 지역사회의 주요 정책 방향에도 변화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투표권법 2조는 그동안 라틴계와 아시안, 원주민 유권자의 정치적 대표성을 보호하는 데 활용돼 왔다. 이에 따라 한인을 포함한 아시안 인구가 증가하는 지역에서도 유권자들이 여러 선거구로 분산되거나 특정 지역에 과도하게 집중될 경우, 실제 인구 규모에 비해 정치적 영향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된다.


커뮤니티 정치력 신장단체인 앨라배마 밸류스의 라이언 웨그너 국장은 “이 문제는 단순히 지도 위의 선을 다시 긋는 일이 아니라 권력과 대표성의 문제”라고 강조했다.

투표권 단체들은 대응 방안으로 투표 참여 확대와 유권자 교육, 소송, 지역 조직화 활동 등을 제시하고 있다. 


페어파이트액션의 아미르 바닷 변호사는 “불공정한 선거구 지도가 통과되더라도 투표를 포기해서는 안 된다”며 “일부 지역은 오히려 경쟁성이 높아질 가능성도 있다”고 말했다.

한편 이번 판결 이후 루이지애나와 조지아, 앨라배마 등 남부 지역에서 선거구 재획정 움직임이 본격화되면서, 2026년 중간선거를 앞둔 미국 정치 지형에도 적지 않은 변화가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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