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마존 살릴 해법, 원주민의 오래된 지혜에 있다”
ACoM, 페루 출신 과학자 로사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 초청 브리핑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 결합해야”…자연의 권리·생물다양성 보전 강조
삼림 벌채와 광산 개발, 생물다양성 감소와 기후변화로 위기에 처한 아마존 열대우림을 지킬 해법을 수백 년 동안 이어져 온 원주민들의 전통 지식에서 찾아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는 지난달 31일 페루 출신 화학생물학자 로사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를 초청해 원주민의 전통 지식과 현대 과학의 결합이 아마존 보전과 의약품 개발, 지역공동체의 지속 가능한 생계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를 살펴보는 언론 브리핑을 개최했다.
내셔널지오그래픽 탐험가이자 아마존 리서치 인터나시오날 설립자인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는 원주민 공동체가 대대로 전승해 온 생태·의학 지식과 현대 과학을 접목하는 연구를 진행해 왔다.
그는 저서 『열대우림의 영혼』을 통해 아마존의 생물다양성과 전통 지식의 가치를 알려왔으며 롤렉스와 유네스코 수상자로 선정되고 BBC가 선정한 ‘올해의 여성 100인’에도 이름을 올렸다.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는 이날 “미래는 조상의 지혜 속에도 있다”며 아마존을 보호하는 것은 단순히 멀리 떨어진 숲을 지키는 차원을 넘어 인간 자신의 생존 기반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부 아마존 원주민들이 인간과 자연을 분리된 존재로 바라보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일부 원주민 문화에서는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나무나 강, 벌 또는 다른 동물의 모습으로 자연에 돌아간다고 믿는다. 이러한 세계관에는 인간뿐 아니라 동물과 식물도 건강한 숲과 깨끗한 물을 누릴 권리가 있다는 인식이 담겨 있다는 것이다.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는 “자연이 건강하지 않으면 인간도 건강할 수 없다”며 원주민들은 필요한 만큼만 자연에서 얻고 다음 세대의 몫을 남기는 한편 자연이 스스로 회복할 시간을 보장하는 방식으로 살아왔다고 설명했다. 최근 국제사회에서 주목받고 있는 ‘자연의 권리’ 운동 역시 이러한 원주민의 세계관과 맞닿아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기존 환경법이 산림이 파괴되고 강이 오염된 이후 책임을 묻는 사후 대응에 치우쳐 있다며, 기후위기와 생태계 파괴가 임계점에 가까워진 상황에서는 환경정책의 중심을 사후 복구에서 예방과 재생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이날 브리핑에서는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가 오랫동안 연구해 온 ‘침 없는 벌’이 주목을 받았다.
약 6,500만 년 전부터 존재해 온 침 없는 벌은 커피와 카카오, 아보카도 등 여러 작물의 꽃가루받이에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여러 아마존 원주민 공동체는 감염 증상을 완화하기 위해 이 벌의 꿀을 사용하고 있다며 과학적 근거를 밝혀달라고 요청했고, 이를 계기로 관련 연구가 진행됐다.
연구 과정에서 침 없는 벌의 가치는 약용 꿀에만 국한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벌을 기르는 일은 원주민의 문화와 교육, 식량과 의학을 연결하는 동시에 여성과 청년들에게 새로운 소득원과 역할을 제공했다. 숲을 파괴하지 않으면서 주민들이 생계를 유지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할 수 있는 가능성도 보여줬다는 설명이다.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는 아마존을 ‘인간의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자연’으로만 보는 기존 인식에도 의문을 제기했다. 최근 고고학 조사와 라이다(LiDAR) 기술을 통해 울창한 숲 아래에서 과거의 도로와 정착지, 농업 흔적 등이 발견되고 있으며, 척박한 토양과 제한된 물을 관리하면서 대규모 공동체가 생활했던 증거도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이에 따라 아마존이 ‘사람 없는 야생’이라기보다 오랜 세월 인간이 자연과 공존하며 가꿔온 거대한 정원에 가까웠을 가능성을 제시했다.
수천 년 전 원주민들이 토양과 물을 관리하고 유용한 식물을 재배했던 지식이 기후변화로 세계 식량체계가 위협받고 있는 오늘날에도 중요한 해법이 될 수 있다는 주장이다.
원주민 전통 지식에 대한 정당한 인정과 이익 공유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는 전통 지식 역시 오랜 시간 관찰과 질문, 실험과 반복을 통해 형성된 것이라며 현대 과학이 수천 년 동안 축적된 원주민들의 지식을 뒤늦게 확인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는 앞으로 원주민의 지식이 과학 연구와 의약품 개발 등에 활용될 경우 지식을 보존해 온 원주민들이 의사결정 과정의 중심에 참여하고, 연구와 개발을 통해 발생하는 혜택도 공정하게 공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아마존의 위기는 남미 지역만의 문제가 아니라는 점도 지적했다.
아마존의 나무들은 막대한 양의 물을 저장하고 이를 다시 대기로 내보내 강수와 기후에 영향을 미친다. 또한 아마존은 커피와 카카오, 목재, 약용식물과 광물자원 등 세계인이 사용하는 수많은 자원의 생산지이기도 하다.
그는 소비자들이 자신이 구매하는 식품과 목재, 귀금속 등이 어디에서 왔는지 관심을 갖는 것만으로도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강조했다. 작은 정원과 나무를 보호하고 지역 환경운동에 참여하는 것 역시 아마존 보호와 연결될 수 있다는 것이다.
바스케스 에스피노사 박사는 특히 폭력과 강제이주, 토지 수탈 등을 겪으면서도 공동체를 다시 세우고 외부사회와 협력해 온 아마존 원주민들의 회복력에 주목했다. 그는 “미래는 첨단기술에만 있지 않다. 미래는 조상들의 오래된 지혜 속에도 있다”며 “아마존을 지키는 일은 멀리 떨어진 숲을 돕는 자선행위가 아니라 인간과 자연이 서로 분리될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우리 자신의 생존 기반을 지키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