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민자 단속 강화에 흔들리는 미국 농촌·소도시
노동력·학교·상권 떠받쳐온 이민자 이탈 우려…“농촌 생존 문제로 번져”
아이오와·오하이오 등 ICE 단속 공포 확산…의료·노인 돌봄 인력난도 우려
미국 정부의 이민 단속 강화가 국경지역을 넘어 농촌과 소도시의 생존을 위협하는 새로운 문제로 떠오르고 있다. 지난 수십 년간 인구 감소와 고령화에 시달려온 미국 농촌지역은 이민자 유입을 통해 부족한 노동력을 충당하고 학교와 지역 상권을 유지해왔지만, 최근 추방 확대와 체류·취업 자격 축소로 이민자들이 지역사회를 떠나거나 경제활동을 중단하면서 다시 인구 감소와 인력난에 직면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가 지난 14일 개최한 언론 브리핑에서 전문가들은 이민자 감소가 단순한 노동력 부족에 그치지 않고 학교 폐쇄와 세수 감소, 지역 상권 위축, 의료 및 노인 돌봄 인력난 등 농촌지역 전반에 연쇄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제니 머리 전국이민포럼 회장은 이민자가 미국 전체 인구의 약 13%, 노동력의 19%를 차지하고 있다며 미국 경제에서 이민자들이 차지하는 비중을 강조했다.
머리 회장에 따르면 2025년 미국의 순이민은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를 기록했으며, 약 220만~230만 명이 자진 출국하고 67만5,000명이 추방됐다. 그는 이민자들이 연간 약 1조3,000억 달러의 세금을 내고 1조7,000억 달러 규모의 소비를 창출하고 있다며 이민자 감소가 지역경제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특히 대도시보다 인구 감소가 심각한 농촌지역에서 이민자의 역할은 더욱 크다는 분석이다.
팀 슬랙 루이지애나주립대 사회학 교수는 이민을 농촌의 인구 감소를 막아온 ‘생명줄’이라고 표현했다. 연방센서스 통계에 따르면 2010년부터 2020년까지 미국 농촌 카운티 약 3분의 2에서 인구가 감소했다. 반면 인구가 증가한 지역 가운데 약 200곳은 이민자와 비백인 인구 증가가 백인 인구 감소를 상쇄하면서 성장을 유지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촌지역의 인구 구성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현재 농촌 주민 4명 가운데 1명은 비백인이며 어린이의 경우 3명 가운데 1명이 비백인인 것으로 나타났다.
슬랙 교수는 “농촌의 미래를 보려면 초등학교나 중학교에 가보면 된다”며 일반적인 인식보다 미국 농촌사회가 훨씬 빠르게 다양해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아이오와주 스톰레이크는 이민자 유입으로 쇠퇴 위기를 벗어난 대표적인 농촌도시로 꼽혔다.
이 지역에서 30년간 경찰서장을 지낸 마크 프로서에 따르면 이민자들이 육가공업을 비롯한 지역 산업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면서 인구 감소에 시달리던 스톰레이크는 다시 성장하는 도시로 변모했다. 스톰레이크 공립학교의 경우 유치원부터 고등학교까지 학생의 약 91%가 영어를 모국어로 사용하지 않는 가정 출신이다.
인구가 감소한 다른 아이오와 농촌지역에서 학교 통폐합이 이어지는 것과 달리 이민자가 지속적으로 유입된 지역에서는 오히려 학생이 늘면서 새로운 학교를 건설하는 현상도 나타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민세관단속국(ICE)의 단속 강화로 지역 분위기는 크게 달라지고 있다.
프로서는 구금이나 추방을 우려한 일부 이민자들이 직장에 나가지 않는 것은 물론 병원 예약을 취소하고 법원이나 교회 출석, 장보기까지 꺼리고 있다고 전했다. 단속에 대한 두려움이 일상적인 경제·사회활동까지 위축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오하이오주 스프링필드도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다.
한때 인구가 1920년 수준까지 감소했던 스프링필드에는 최근 수년간 약 1만~2만 명의 아이티계 주민이 유입되면서 지역경제가 활기를 되찾았다. 칼 루비 센트럴 크리스천 교회 담임목사는 아이티계 주민들이 지역 기업의 부족한 노동력을 채우는 동시에 사업체와 교회, 비영리단체 등을 세웠으며 인구 증가에 힘입어 약 3,000채의 신규 주택까지 건설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체류 및 취업 자격에 대한 불안이 커지고 ICE 단속까지 시작되면서 상당수 아이티계 주민들이 외출을 꺼리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
루비 목사는 교인 가운데 ICE 출석 통보를 받은 뒤 발목에 전자감시장치를 착용한 사례도 있다며 일을 하지 못하는 주민들이 집세와 식비를 어떻게 마련할지를 걱정하는 상황이라고 전했다.
평소 주일예배에 약 50명의 아이티계 주민이 참석했지만 최근에는 거의 모습을 보이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이민자 감소는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농촌지역의 의료와 노인 돌봄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슬랙 교수는 농촌의 노인 인구가 증가할수록 이들을 돌볼 생산연령층이 필요하지만 젊은 주민들은 계속 도시로 빠져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루비 목사 역시 이민자들이 요양시설 등에서 상당수 일자리를 담당해왔다며 이들이 사라질 경우 노인 돌봄 분야의 인력 부족이 더욱 심각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민자들을 돕기 위한 지역사회의 움직임도 확산하고 있다.
스프링필드에서는 주민 약 400명이 참여하는 단체와 20여 개 교회가 아이티계 주민 지원에 나섰으며, ICE 움직임을 파악해 주민들에게 알리는 긴급대응 활동도 진행되고 있다. 아이오와와 네브래스카, 미네소타에서도 종교·시민단체들이 이민자 가정에 식료품을 배달하거나 법원 출석에 동행하는 등 지원 활동을 확대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대규모 추방과 이민자 감소가 지속될 경우 이미 고령화와 청년층 유출에 시달리고 있는 미국 농촌과 소도시의 쇠퇴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고 전망했다.
슬랙 교수는 이민자들이 사라질 경우 농촌지역에 어떤 일이 벌어질지를 묻는 질문에 “인구가 고령화하고 줄어들며 결국 쇠퇴하게 된다”고 경고했다.
이어 그는 “미국 농촌지역이 살아남으려면 이민은 반드시 해법의 일부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결국 미국의 이민정책을 둘러싼 논쟁이 국경 통제와 불법체류 문제를 넘어, 인구 감소에 직면한 농촌과 소도시의 노동력과 학교, 상권, 의료·돌봄 시스템을 어떻게 유지할 것인가라는 지역사회의 생존 문제로까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