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중간선거 앞두고 원주민 표심 주목…젊은층 정치참여 크게 늘어
연방·주·지방선거 원주민 후보 350명 이상 출마…역대 최다 기록
알래스카 등 접전 지역서 영향력 관심…부족 주권·경제 주요 현안
오는 11월 3일 미국 중간선거를 앞두고 그동안 전국 정치 무대에서 상대적으로 주목받지 못했던 아메리카 원주민 유권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이 새로운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미시간과 알래스카 등 선거 경쟁이 치열한 지역에서는 원주민 유권자들의 투표 참여가 접전 양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젊은 원주민들의 정치 참여와 각급 선거에 출마하는 원주민 후보도 크게 늘고 있다.
올해 연방의회와 주지사, 주의회, 지방정부 선거 등에 출마했거나 출마 중인 원주민 및 원주민계 후보는 최소 355명으로 집계돼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이는 2024년의 263명을 크게 웃도는 규모다.
전문가들은 이 같은 변화가 단순히 소수계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확대를 넘어 미국 정치권에서 원주민 공동체의 목소리가 더욱 중요하게 다뤄지는 계기가 될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아메리칸커뮤니티미디어(ACoM)가 지난 9일 개최한 ‘미국의 변화하는 유권자 지형’ 온라인 브리핑에서는 원주민 유권자들의 정치적 관심사와 투표 참여의 어려움, 청년층의 정치활동 확대 등이 주요 의제로 다뤄졌다.
이날 브리핑에 참석한 퍼스트네이션스개발연구소(First Nations Development Institute)의 마이클 로버츠 회장은 원주민 유권자들을 하나의 정치 성향을 가진 집단으로 바라보는 것은 잘못된 접근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원주민 사회가 지역과 부족에 따라 역사적 배경과 생활환경, 정치적 관심사가 크게 다르다며 단순히 민주당과 공화당 지지 여부만으로 원주민 표심을 분석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원주민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문제 역시 부족의 주권과 토지, 언어와 문화 보존 등 고유한 현안에서부터 인플레이션과 생활비, 주택, 일자리 등 일반 유권자들이 관심을 갖는 경제 문제까지 다양하다.
2024년 실시된 원주민 유권자 조사에서는 전체 응답자의 78%가 투표할 때 부족 관련 현안을 고려한다고 답했다. 보호구역 안이나 인근에 거주하는 응답자는 82%, 그 밖의 지역 거주자는 72%였다.
특히 부족 주권과 토지에 관한 권리, 전통문화와 언어 보존이 중요한 정치적 관심사로 나타났다.
원주민들에게 부족 주권이 중요한 이유는 이들이 미국 시민인 동시에 개별 부족 국가의 시민이라는 독특한 정치적 지위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교육과 주거, 토지 이용을 비롯해 연방정부와 체결한 조약에 따른 권리 역시 원주민들의 삶과 직접 연결되는 문제다.
투표소까지 편도 100마일…여전히 높은 투표 장벽
원주민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의지가 높아지고 있지만 실제 투표에 참여하기까지 넘어야 할 장벽은 여전히 적지 않다.
클레어몬트 대학원 정치·정책학과의 멜리사 로저스 교수는 보호구역과 농촌 지역에 거주하는 원주민들이 다른 유권자들보다 투표를 위해 더 많은 시간과 비용을 부담해야 하는 현실을 지적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네바다주 덕밸리(Duck Valley) 보호구역에서는 주민들이 투표소에 가기 위해 편도 약 100마일을 이동해야 했던 경우도 있었다.
일부 원주민 보호구역에는 일반적인 도로명 주소가 없거나 우편물이 각 가정까지 배달되지 않아 우편투표 이용에도 어려움이 있다.
운전면허증이나 정식 주거지 주소를 요구하는 유권자 신분 확인 규정 역시 자동차나 일반적인 주소가 없는 주민들에게는 투표 참여를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로저스 교수는 보호구역 내부에 투표소와 유권자 등록 장소를 확대하면 투표 접근성이 개선되고 참여율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 같은 어려움에도 일부 원주민 지역에서는 높은 투표 참여율을 보이고 있다.
원주민 권익단체인 네이티브 오거나이저스 얼라이언스(Native Organizers Alliance)의 주디스 르블랑 사무총장은 나바호 원주민 공동체의 경우 일부 선거에서 투표율이 약 60%에 이른다고 소개했다.
젊은 원주민들, 유권자 등록부터 정책 참여까지
이번 중간선거에서 특히 주목되는 변화는 젊은 원주민 세대의 정치 참여 확대다.
르블랑 사무총장은 미국 내 25개 원주민 커뮤니티에서 진행하고 있는 현장 활동을 통해 젊은 유권자들 사이에서 2024년 선거 때와는 다른 수준의 적극적인 참여 의지를 확인하고 있다고 밝혔다.
소셜미디어를 통해 전쟁과 사회 갈등, 정부 정책이 지역사회에 미치는 영향을 실시간으로 접하면서 정치적 문제를 직접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커지고 있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변화는 메인주의 젊은 원주민들 사이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와바나키 정책 청년 이니셔티브(Wabanaki Policy Youth Initiative)의 공동 코디네이터인 세이지 필립스에 따르면 청년들은 보호구역과 지역사회를 찾아다니며 주민들의 유권자 등록을 돕고 선거 관련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또한 선거에 출마한 후보들을 직접 만나 부족 주권과 교육, 토지 문제 등에 관한 정책 입장을 확인하고, 부모와 조부모 세대에게 주의회에서 논의되는 주요 현안을 설명하는 활동도 펼치고 있다.
이들은 아직 투표 연령에 도달하지 않은 어린 세대에게도 부족의 권리와 정치 참여의 중요성을 알리고 있다.
특히 메인주의 원주민 청년들이 관심을 갖는 현안 가운데 하나는 1980년 제정된 ‘메인 인디언 토지청구권 합의법’이다.
필립스는 이 법으로 인해 메인주의 연방정부 인정 부족들이 다른 지역 원주민 부족과 동등한 연방법상의 권리와 혜택을 누리는 데 제약을 받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자신들이 요구하는 것은 특별한 대우가 아니라 동등한 권리와 공정한 대우라고 강조했다.
메인주에서는 다음 주의회 회기에 4개 연방 인정 부족 모두가 부족 대표를 두게 될 예정이라는 점도 주목받고 있다. 이들 대표에게 일반 의원과 동일한 표결권이 주어지는 것은 아니지만, 부족 구성원들이 정책 논의 과정에 직접 참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는 평가다.
원주민 후보 역대 최다…정치적 대표성 확대
원주민 유권자들의 정치 참여 확대는 선거에 직접 출마하는 후보자 수에서도 나타나고 있다.
올해 연방의회와 주지사, 주의회, 지방정부 등 각급 선거에 출마한 원주민 후보는 300명을 훌쩍 넘어 역대 최다 수준을 기록했다.
전문가들은 원주민 후보들의 증가가 부족 주권과 토지 문제뿐 아니라 주거와 교육, 경제발전, 공공서비스 등 원주민 공동체가 직면한 다양한 현안을 미국 정치권의 주요 의제로 끌어올리는 데 기여할 수 있다고 분석한다.
그러나 원주민들의 정치적 대표성과 영향력이 확대되는 흐름 속에서도 주요 정당과 선거 캠프의 관심은 여전히 충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로버츠 회장에 따르면 2024년 선거를 앞두고 실시한 조사에서 원주민 유권자의 절반 이상은 정당이나 후보 측으로부터 선거 관련 연락을 받지 못한 것으로 나타났다.
전국 여론조사에서도 원주민 유권자들의 실제 정치적 성향이 충분히 반영되지 않는 문제가 제기됐다.
그는 2024년 대통령 선거 당시 원주민 단체들이 정확한 표심을 파악하기 위해 별도의 조사 비용을 부담해야 했던 사례를 소개하며 원주민들이 미국 정치에서 여전히 제대로 조명받지 못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전문가들은 원주민 유권자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정확히 이해하려면 부족별·지역별 특성과 함께 보호구역 주민과 도시 거주자들의 서로 다른 생활환경 및 정책적 요구를 살펴봐야 한다고 강조했다.
특히 이번 중간선거에서는 원주민 청년들의 적극적인 유권자 등록 활동과 지역사회 조직화, 원주민 후보자들의 증가가 실제 투표 참여와 정치적 대표성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전문가들은 원주민 유권자들의 관심이 특정 정당에 대한 지지 여부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며, 부족 주권과 경제적 안정, 문화적 권리, 정치적 대표성 등 다양한 현안에 대한 후보들의 정책과 대응이 중요한 판단 기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는 11월 중간선거는 그동안 미국 정치에서 상대적으로 소외돼 왔던 원주민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정치 참여와 정책적 영향력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살펴볼 중요한 계기가 될 전망이다.













